회통론 계승 ‘선교일치’ 주장
서산휴정(西山休靜, 1520∼1604) 스님은 1520년(조선 중종 15년)에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최씨(崔氏)이다. 9세에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양부(養父) 안주 목사(牧使) 이사증(李思贈)에게서 자랐다. 12세 되던 해에 양부를 따라 서울로 옮겨 성균관에서 3년 동안 글과 무예를 익혔다. 과거를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15세에, 동학(同學)들과 지리산의 여러 사찰을 유력하던 중, 영관대사(靈觀大師)의 설법을 듣고 불법(佛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3년간 경전의 깊은 교리를 탐구하던 중에, 어느 날 밤 깨달은 바 있어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홀연히 창 밖에서 두견이 우는 소리 들리더니, 보이나니 봄 동산이 모두 다 내 고향이었네.” 이튿날 아침에 스님은 스스로 머리를 깎고 ‘차라리 평생을 멍청한 천지가 될지언정 결코 문자법사는 되지 않으리라.’고 결심한 다음, 숭인장로(崇仁長老)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였다.
이후 공부에만 전념하던 중, 어느 날 역성촌(歷星村)이란 마을을 지나다가, 한 낮에 닭 우는 소리에 문득 마음자리를 깨닫고는 오도송을 지었다. “머리는 희지만 마음은 늙지 않는다. 옛 사람이 일찍이 말했거니 꼬끼오 하는 소리 듣는 찰나 장부의 할 일 다 마쳤네.” 이후 스님은 30세(1549년, 명종 4년)되던 해에 승과(僧科)에 급제하였고, 대선(大選)을 거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다. 37세(1557년) 되던 선교양종판사직이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 하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 묘향산에서 오래 주석하였다.
禪은 부처님 마음, 교는 부처님 말씀., 임란때 승병활동 ‘배불론’ 약화시켜...
스님은 설파한다. “세존(世尊)께서 마음을 전하신 것이 선지(禪旨)가 되고 부처님께서 일생에 말씀하신 것이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선과 교의 근원은 부처님이시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다.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선이요, 말 있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은 교이다. 또한 선법과 교법은, 법은 비록 한 맛(一味)이지만, 뜻은 하늘과 땅같이 동떨어진 것이다.”
주지하듯이 스님의 선법은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라는 언명으로 대표된다. 스님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닦으면, 누구나 성불(成佛)할 수 있다. 그러나 선과 교의 관계를 본다면, 교는 부처의 가르침으로 공(空)의 이치를 가르친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공의 이치에 곧바로 들어가서 체득하는 것은, 오직 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스님은 선교양종을 통합하기 위한 필요성을 느껴〈선교석(禪敎釋)〉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이 책에서 한편으로는 선과 교를 통합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은 교만 중히 여기고 마음을 가벼이 보면 비록 수많은 겁(劫)을 닦는다 하더라도 천마외도(天魔外道)를 지을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스님은 염불과 선을 일치시키려는 목적에서 유심정토사상(唯心淨土思想)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님은 선조의 명에 따라, 7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이 되어 전국에 격문을 돌려 승병을 모집하였다. 이때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은 금강산에서, 처영(處英)은 지리산에서 승군을 모았고, 스님은 문도 1500명을 모아 이를 총지휘하여 명(明)나라 군사와 함께 평양을 탈환하였다. 이때 보여주었던 스님의 구국에 대한 일념은, 당시대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면서, 배불론으로 침체되었던, 조선 중기의 불교 중흥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스님의 사교입선을 주로 하는 선교일치사상은 한편으로는 한국불교사상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회통(會通) 정신을 다시 조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보조지눌의 선교일치(禪敎一致) 선사상의 맥락을 이어 받았으면서, 더 나아가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에 그 사상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휘광(輝光)이 더욱 빛난다.
[ 출처: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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