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지기와 함께하는 불교이야기 - 참 좋은 인연..!! ^^ ▒▒▒
날마다좋은날.^^

HOME 선불교 조사열전  
  선불교의 이해
  조사열전
  큰스님 법문
  선시감상
  참선강좌
  선불교 강의

조동종의 開祖,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스님은 절강성(浙江省) 회계(會稽)사람으로 속성은 유(兪)씨다. 스님은 어려서 마을에 있는 절에 출가한 후 다시 오설산(五洩山)의 영묵(靈默) 스님에게로 가서 20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남전(南泉), 위산(山) 스님 등 선지식들을 참례하다가, 마침내 운암담성(雲巖曇晟, 782∼841) 스님의 법을 잇게 된다. 이때 스님은 게송을 지었는데, 이것은 선문오도송(禪門悟道頌)의 효시이다.

“절대로 그(影)에게서 찾으려 하지 말라. 멀고 멀어서 나와는 상관없네. 나 이제 홀로 가지만 곳곳에서 그(影)를 만나네. 그(影)는 지금 진짜 나이건만 나는 이제 그(影)가 아니다. 진실로 그렇게 깨달아야 비로소 진실로 그를 만나리라.”

조동종(曹洞宗)이라는 종명(宗名)은 동산양개의 동(洞)과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의 조(曹)를 각각 따서 지은 것이다. 조산본적 스님은 어려서 유학을 공부하다가 19세에 출가하여 25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당 함통(咸通, 860∼873)초에 비로소 동산스님을 뵙고서 스님의 깊은 법을 전수 받았다.

주지하듯이 조동종의 선법은 묵조선법(默照禪法)으로 표방(標榜)된다. 이때 조동종이 묵조라는 말에 의해서 드러내려고 한 것은 묵(默)에 있어서의 무분별과 조(照)에 있어서의 지(知)에 대한 자각이다. ‘묵조’는 마땅히 ‘묵’과 ‘조’를 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서로 일여(一如)하게 될 때가 바로 묵조선의 현성(現成)이다. 이것은 본증(本證)의 현성 내지는 자각의 의미이다. 때문에 묵조선의 구조는 본증자각(本證自覺)을 설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 중점이 바로 깨달음의 세계 곧 불(佛)의 세계에 맞추어진다.

본증의 자각이기 때문에 그 깨달음으로 이끌어 나아가는 방법과 수행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묵묵하게 좌선을 할 때에 그대로 투탈된 깨달음의 세계가 현현한다는 것이다. 그 세계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래부터 도달해 있는 세계이다. 이와 같이 묵조선법의 특색은 ‘묵(默)’으로서의 좌선의 수(修)와 ‘조(照)’로서의 현성한 증(證)을 달리 보지 않고 증(證)이 본래부터 자성에 구족되어 있음을 밝힘에 있다.

동산양개 스님과 조산본적 스님의 가르침을 이어서 ‘조동종’성립
‘조동종’ 선법은 묵조선법으로 표방. 온갖 감각을 느끼며 좌선 수행


간화선(看話禪)의 경우, 수행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으로서, 어디까지나 수단이 된다. 또 큰 의문을 일으키는 곳에 큰 깨달음이 있다고 하여 공안(公案)을 방편으로 자기를 규명하려 한다. 이에 비해서 묵조선(默照禪)은 본래 자성청정(自性淸淨)을 기본으로 한 수행법으로, 갑자기 대오(大悟)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내재하는 본래의 청정한 자성에 절대로 의뢰하는 선이다.

이 문제와 연관하여 전통적으로 간화선은 묵조선을 사선(邪禪)이라고 공격해 왔다. 그렇지만 간화선과 묵조선의 차이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추구하는 방편(用)이 다른 것이지 그 궁국적인 목적(體)이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사(正邪)의 문제로 양 선법을 구분하려는 태도는 지나치다.

묵조선에서는 수행(좌선)이 있는 곳에 반드시 깨달음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시각(始覺)이 곧 본각(本覺)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음의 체험은 달리 특별한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자기가 현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상의 모든 사사물물(事事物物)이 다 본래의 자기체험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때 일상행위 그대로의 좌선이 진정한 좌선인 이유는 그 근저에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는 본각사상이 깔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묵조선은 인간의 존엄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모든 인간은 본래 타고 날 때부터 깨달음을 갖추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마음을 내어 앉아 있는 그 자체가 부처임을 자각하는 행위가 된다. 즉 ‘1시간 앉아 있으면 1시간 부처고, 2시간 앉아 있으면 2시간 부처’라는 묵조선의 경구처럼, 온갖 감각기관을 닫아두고 화두에 집중하는 간화선과는 다르게, 앉아서 온갖 감각을 느끼는 것이 묵조선이다.

일반대중의 경우 화두선으로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얘기를 듣기 어렵다. 그만큼 높은 근기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묵조선은 전통적인 수행법이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구나 할 수 있고, 지금 이 자리에서 깨달음에 나아갈 수 있는, 현대적인 수행법이기도 하다.


[ 출처:불교신문 ]

목록
번호        제목
72   조선불교 중흥조 서산휴정(西山休靜) (1520∼1604)
71   호법의 등불 득통기화(得通己和) (1376∼1433)
70   나옹혜근(懶翁慧勤) (1320∼1376)
69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68   조계종 중흥조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67   남종선 전래자 명적도의(明寂道義) (생몰연대미상)
66   간화선의 창시자 대혜종고(大慧宗ㅇ) (1089∼1163)
65   임제종 황룡파 개창자 황룡혜남(黃龍慧南) (1002∼1069)
64   임제종 양기파 개창자 양기방회(楊岐方會) (992∼1049)
63   법안종의 開祖,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
62   운문종의 開祖,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조동종의 開祖,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123456
검색
since 2000-2022 inyeon.org
사이트 소개 | 사이트맵 | 후원 | FAQ | 이메일무단수집 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