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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중흥조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선교갈등 해소… 정법구현 노력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 스님은 고려 의종 12년 황해도 서흥군에서 출생했다. 스님은 16세에 구산선문 가운데 사굴산문의 법맥을 이은 종휘(宗暉) 선사의 문하에 출가하였지만, 배움에는 일정한 스승이 없었다고 여겼으며 가르쳐 주는 사람은 모두 스승으로 여겼다.

스님은 법명이 지눌이었지만 평소 스스로를 ‘소를 치는 사람(牧牛子)’이라 부르기를 즐겼으며, 입적 후 희종으로부터 ‘부처님의 해처럼 널리 비추는 나라의 스승(佛日普照國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스님은 의종 12년에서부터 희종 6년까지 4대에 걸쳐 53년의 길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스님이 생존했던 기간은 전 고려사를 통하여 가장 혼란하였던 무인집권의 시기였다.

스님과 동시대의 승려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던 시대를 말법시대로 인식하고 정토의 업을 닦을 것을 스님에게 권한다. 그렇지만 스님은 당대를 말법시대로 보는 것을 거부하면서, 밖으로는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의 틈바구니 속에서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아 정법을 구현하고, 안으로는 선교간의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설파한다. “요즘 경을 배우는 많은 사문들이 목숨을 버리고 도를 구하면서 모두 밖의 상에 집착하여 서방을 향해 소리를 높여 부처님을 부르는 것으로 도의 실천으로 삼는다. 지금까지 배워 익힌 마음자리(心地)를 발명한 부처와 조사들의 비결을 이름과 이익을 위한 학문이라 하거나, 또한 분수에 맞지 않은 경계라고 하면서 종내 생각에 두지 아니하고 일시에 버린다. 이미 마음 닦는 비결을 버렸기 때문에 본심에 돌이켜 비추는 공의 보람을 알지 못한다. 한갓 영리한 생각으로 평생의 노력을 헛되이 쓰면서, 마음을 등지고 상을 취하면서 성인의 가르침에 의지한다 하니, 지혜 있는 사람으로서 어찌 슬퍼하지 않겠는가.”

혼란했던 무인집권시기에 활동. 정혜결사 주도… 새 승풍 세워

스님은 이러한 각성을 바탕으로 하여, 고려 불교계의 상황을 진단하고, 그 대책을 강구한다. 그것은 첫째 공부하는 이들의 청정한 자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고, 둘째 스님이 주축이 되어서 실행하는 결사운동의 철학적인 토대를 세우는 것이며, 셋째 선교간의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는 것이다.

스님 선사상의 기저에는 ‘자성(自性)의 공적영지(空寂靈知)’라는 독특한 견해가 자리잡고 있다. 공적영지는 하택종(荷澤宗)의 근본 사상으로 마음의 본질을 공적한 영지의 뜻으로 파악한 것이다. 공(空)이란 제상을 제거하는 것이니 차견(遮遣, 부정적 방법으로 뜻을 드러냄)의 말이다. 적(寂)이란 실상의 본성이 변동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전혀 없다’는 뜻과 다르다. 영지(靈知)란 마음의 당체를 표현(表顯, 긍정적 방법으로 뜻을 드러냄)하는 뜻으로 분별과 같지 않다.

그러므로 처음 공부할 때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적(寂)’과 ‘지(知)’만이 있을 뿐이니 변하지 않고, 끊어지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서 ‘공적영지’는 ‘그 무엇’에 대하여 안다는 지적 파악능력이 아니라 깨달았건 미혹되어 있건 모든 마음에 본래 있는 성품이다. 대상의 유무에 관계없이 공적지는 항상 내재하는 인식의 근원적 빛인 셈이다.

스님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자심(自心)에는 본각적(本覺的)인 입장에서의 불성(佛性)인 자성(自性)이 있다. 이때 자심은 자성의 심성(心城)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자심은 망심(妄心)때문에 자성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즉 무명에 의하여 자성이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이때 인간의 자심은 자기 자신 내부에 있는 불성으로서의 자성의 존재를 알아차려야만 한다. 이것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적영지에 의한 직관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회광반조(廻光返照)할 수 있다.

이때 불성으로서의 자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중생의 보편적이며 본래적인 특징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성의 근원에 대해서 물을 수는 없다. 그것은 그냥 있는 것이고, 우리는 단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깨달음 이후 ‘자각적 수행’ 강조

지눌스님을 대표하는 사유체계는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이다. 그리고 이 돈오점수사상은 혜능스님의 ‘돈오’사상과 종밀스님의 ‘돈오점수’사상을, 스님 자신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수용하고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 구축한 것이다.

스님에 의하면 범부(凡夫)란 미혹했을 때에 사대(四大)로 몸을 삼고 망상(妄想)으로 마음을 삼아 자성(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며 자기의 공적영지(空寂靈知)가 참 부처인 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홀연히 선지식의 가르침을 만나 일념회광(一念廻光)에 이 자성을 보면, 이 성품의 바탕이 모든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심(自心)이 자오(自悟)되는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심은, 무시이래 자기에게 본래적으로 깃들여 있는 불성으로서의 자성에 대하여, 한 생각에(一念) 빛을 돌이켜서(廻光) 자심(自心)을 비추는(返照) 회심이 필요하게 된다.

스님은 우리에게 비록 본성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거기에 그치지 말고 깨달음을 의지해 닦아서 점차로 익히어 성인(聖人)을 이루라고 말한다. 지눌스님 사유체계의 중심이 되는 힘은 바로 이러한 불격(佛格)에 대한 그의 강한 지향(志向)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점이 어떤 면에서는 스님이 돈오(頓悟)보다는 차라리 오후(悟後)의 수(修), 즉 우리의 자각적 노력인 점수(漸修)에 더 큰 무게 중심을 두고 그의 사유체계를 전개해 나가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눌스님 이론의 큰 틀은 돈오점수., 간화경절문은 구체적 수행방편

스님이 보기에는 돈오점수는 모든 근기를 다 포용할 수 있는 천성(千聖)의 궤철(軌轍)이다. 다시 말해서 도에 들어가는데 문이 많지만 단적으로 말하면 돈오점수만이 깨달음에 들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비록 돈오돈수(頓悟頓修)라 할지라도 사실은 돈오점수의 변형된 모습이다. 왜냐하면 다생 전에 먼저 깨닫고 그 깨달음을 의지해 다생을 닦아서 점차 훈습해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즉시 깨달아 한 번에 몰록 마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돈오돈수도 또한 돈오 이후에 점수하는 것에 속한다. 또한 이 오후(悟後)의 점수(漸修)는 다만 오염되지 않는 것인 뿐만이 아니라, 다시 만행을 겸해 닦아서 자타를 아울러 구제하자는 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곧 부처’라고 해도 그 부처는 지금 묻혀 있고 갇혀 있는 것이다. 무명(無明)의 거칠고 두꺼운 때를 벗지 않고서는 우리는 부처일 수가 없다.

또 때를 벗었다 해도 새롭게 계속 부딪혀오는 세상에서 우리는 불성으로서의 자성을 가지고 그 세상을 끌어안고 살기 위해 신명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점수가 등장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스님에 의하면 선문(禪門)에는 다시 하나의 문이 더 있다. 그것은 무심합도문(無心合道門이)다. 그리고 그 무심합도문은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에 의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스님이 별도의 방법으로 제시한 간화경절문은 대혜종고(1089∼1163) 스님의 간화선(看話禪) 사상의 영향아래 형성되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스님의 간화선 사상은 대혜스님이나 그 제자들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스님 스스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용되고 체득되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혜스님의 간화선을 수용하는 스님의 입장은 대혜스님의 의도와 꼭 같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명심할 것은 스님이 돈오점수를 천성의 궤철이라고 한 점과 스님의 간화선 강조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범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돈오점수는 지눌스님 이론의 큰 담론이고, 간화경절문은 그 큰 담론의 구체적인 수행방편으로서의 작은 담론으로, 어떤 때는 돈오를 제대로 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자각으로, 어떤 때는 돈오 이후에 오후수를 제대로 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자각으로 제시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지눌스님은 대혜스님이 간화선을 주장하면서 얻고자 했던 것을 모두 수용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방법론적인 자각이라는 점에서만은 대혜스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 출처:불교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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