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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종의 開祖,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스님은 절강성 가흥현(嘉興縣) 사람으로 속성은 장(張)씨이다. 스님은 17세에 출가하여 교학과 계율에 깊은 지견을 얻었다. 그러나 교학 등이 ‘궁극적인 자신의 본분을 밝히지 못함’을 탄식하고 곧바로 선(禪)의 길로 나아가서,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의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후 스님은 지금의 광동성 유원현(乳源縣) 북쪽의 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운문종(雲門宗)을 개창하여 크게 종풍을 떨치게 된다.

스님은 설파한다. “시운이 다하여 말법에 이르른 줄 알겠지만 요즘의 선사들은 북쪽으로 가서 문수에게 예배하고 남쪽으로 가서 형악(衡岳)에 오르며, 헛되이 시주들의 공양만 없앤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불법의 도리를 묻기라도 하면 칠을 담은 통처럼 깜깜하면서, 그것도 모른 채 기분대로 노닐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만일 진실한 후학, 조실이라면 모름지기 정신을 차리고 부질없이 남의 말만을 기억하지 말라. 뒷날 스스로를 속일 뿐이다.”

‘남의 말만을 기억하여 자신의 언어로 삼지 말라’고 설파하는 스님의 선법은 마치 임제의현 스님의 설법을 듣는 것과 같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그는 임제스님보다도 더 파격적인 선사(禪師)였다고 할 수 있다. 스님은 어느 때 법어를 하는 도중에, 붓다가 태어날 때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뒤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며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라고 외쳤다는 경전의 고사를 소개한 뒤 갑자기, “그때 내가 이를 보았다면 한 방망이에 타살하여 개에게 주어 먹게 하여 천하의 태평을 도모하였을 것이다”라고 외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문언스님 ‘산이 물위로 걸어간다’., 독설 통해서만 불교적 진리 토로
스님 선법은 임제스님보다 파격. 수행 통한 발상의 전환 있어야 접근 가능...


어떤 때 한 학인이 물었다. “부처란 무엇인가요?” 스님은 대답한다. “마른 똥 막대기다” 또 다른 학인이 물었다. “만법은 어디서 나옵니까?” 스님은 대답한다. “똥더미에서 나온다.” 스님은 중생, 더 나아가서 부처를 ‘똥 막대기’나 ‘똥 더미’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중생은 한편으로는 냄새나는 비천한 존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처인 존재이다. 그런데 학인은 부처와 중생을 구분하고 부처를 대상화한다. 이에 스님은 역설을 빌어, ‘너는 똥 막대기다. 그런데 그 똥 막대기가 법신이고 불성을 함유하고 있는데 너는 그것을 모르고 있구나’ 라고 학인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과격한 독설을 통해서만 불교적 진리를 토로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선의 요체를 아주 간명직절한 은유나 간단명료한 일구(一句)를 통해서 표현하기도 하였다. 어떤 때 한 학인이 물었다. “어떤 것이 제불(諸佛)의 출신처입니까?” 스님이 답했다. “산이 물 위로 걸어간다.” 스님의 이 대답에서 우리는 약간 막막해진다. 주지하듯이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계에서 산이 물위로 가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스님이 표방하는 선의 세계는 기존의 사고체계로 보면 역설이고 모순이 된다. 분별지의 세계 안에서 산은 언제나 움직일 수 없는 것이고, 물은 언제나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인은 본체(本體)와 작용(作用), 전체(全體)와 부분(部分), 도(道)와 만물(萬物), 체(體)와 용(用) 등을 서로 상대하는 것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스님에게 질문을 한다. 그런데 일원론적(一元論的)이고 체용(體用)이 일여(一如)한 선의 세계에서는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일 뿐이다. 이것들은 경우에 따라 서로 분리(分離)되기도 하고 호환(互換)되기도 하면서도 개체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보편성을 유지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은 ‘산이 물위로 걸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스님의 선법은 풀이로 접근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통찰(洞察)과 직관(直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행(修行)을 통한 ‘발상(發想)의 전환(轉換)’이 요구된다. 오늘날을 정보화 시대라고 한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더 나아가 가상공간과 실제공간의 분별마저도 없다.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충격적인 변화와 개혁, 그리고 사유체계의 혁명이 선이 1천 여년 이상 주장해온 그것과 많은 점에서 일치한다고 본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 출처:불교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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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남종선 전래자 명적도의(明寂道義) (생몰연대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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