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지기와 함께하는 불교이야기 - 참 좋은 인연..!! ^^ ▒▒▒
날마다좋은날.^^

HOME 선불교 선불교의 이해  
  선불교의 이해
  조사열전
  큰스님 법문
  큰스님 육성법문
  선시감상
  참선강좌
  선불교 강의

九. (2) 선의 연구와 비판 I
사실 불교나 선의 학문적인 연구와 이에 대한 비난은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평생 중생교화에 잠시라도 쉴 사이 없이 설법하셨음에도 불구하고『능가경』에서는 '나도 성도이래 열반에 들 때까지 49년간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고 말씀하시고, 또한 '일체의 모든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이 진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 법문'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선불교의 입장도 역시 방편법문으로 설해진 붓다의 경전을 통하여 불교의 정신을 스스로 체득하게 하는 실천불교인 것이다. 임제의 어록에 '일체의 경전은 약방의 처방전과 같다.'라고 하는 말은 선불교의 경전관을 잘 말해 주고 있다.『조당집』14권「백장회해전」에 백장은 '경을 읽거나 책과 서적을 읽는 목적은 모두 자기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일체의 모든 가르침은 오직 지금의 감각하는 성품의 자기를 거울삼아 비추어 분명히 밝히기 위한 것이다. 반드시 온갖 일체 유무의 경계에 끄달리지 말아야 한다.'라고 설하고 있다. 선어록에 자주 보이는 고교조심(古敎照心)이나 고경조심(古鏡照心)이라는 명구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즉 이 말은 옛성인의 가르침을 모두 자기의 마음을 비추어 보기 위한 거울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선의 경전관은 다른 기회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 잠시 선의 학문적인 오늘날의 과제에 대한 일본의 스즈끼 다이세쯔(領木大拙)의 주장을 소개하기로 하자. 스즈끼가 1949년에 발표한『임제의 기본사상』이란 책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임제록』은 지금까지 어떤 의미로서는 그다지 연구되지 않은 책이라 하겠다. 과연 이 책 가운데의 상당(上堂)법문이나, 시중(示衆), 감변(勘辯), 행록(行錄) 등이라고 하는 것은 조실과 수행승 납자들간에 선원에서 선문답「상량(商量)」으로 실시되고 자세히 조사하고 연구되어 왔다. 또한 선의 어록 거의 모두 도선 수행의 도량 및 여러 곳의 선의 법회에서 제창(提唱;강의)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볼 때 임제의 연구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오늘날의 과제라고 하는 것은 종교 경험의 사실을 가리키며, 오늘날의 연구 태도라고 하는 것은『임제록』을 전체적인 견지에서 그(임제)의 사상에 대한 움직임의 자취를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작업은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었다. 전문 선사들은 이러한 작업을 쓸데없는 일(친절)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겠지만, 임제 연구의 입장은 그들의 입장만으로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그들의 편견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스즈끼는 임제록을 연구하여 그의 선사상이「인(人)의 사상」에 있음을 최초로 밝혔다. 즉 그는 사람(人)이 중국 조사선의 주체이며, 이러한 사고는 임제에 의해서 처음으로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된 사실 등을 구명하고 있다. 스즈끼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선의 학문적인 연구는 전통적인 선사들의 어록 강의와는 다른 새로운 오늘날의 학문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스즈끼는 이것을 임제의 종교적인 경험의 사실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즉 여기 종교 경험의 사실이라는 것은 소위 말하는 종교 체험과는 다른 것이다.

종교 체험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체험자 자신의 주관성과 직관적인 신비성을 갖는다. 종교 경험은 일상생활에 전개되어 언어로 표현되고 사상을 형성하는 등 사회성 및 보편성을 갖는다. 스즈끼가 말하는 종교 경험의 사실을 종교 체험의 사실로 바꾸어『임제록』을 전체적인 견지에서 임제의 선사상을 구명함과 동시에 그 옛날 임제의 정신세계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여 그의 불교정신을 더욱 확실하고 분명히 밝히고자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공안선의 실천이 중심이 되고 있는 한국불교에서는 대개의 선사들이 선의 어록 등을 분석하고 논리적이며 해석학적인 선의 연구태도를 보고 다음과 같이 비판할 것이다. '선의 치명적인 살상행위는 문자상의 천착이며,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연구되어 그 깨달음의 체험에 대한 주관적인 묘처(妙處)가 너무 분석적으로 연구되어 버리는 것이다. 심리학적, 종교학적인 연구나 논문은 이렇게 만들어 질 수 있을지 모르나, 이렇게 되면 안타깝게도 선은 수술대 위에 올라 누운 시체가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선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자들을 비난하고 통탄하면서 선 체험, 혹은 선 경험을 지상제일주의로 강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여기서 깨달음 그 자체와 선의 학문적인 연구의 입장을 냉정히 생각해 보자.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선의 체험을 통한 깨달음의 사실이 문자의 해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마치 농과대학의 강의실에서 아무리 호박에 대한 재배 방법이나 호박의 모양이나 성질 영양분 등을 분석하고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대학의 강의실에서는 호박꽃이 피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사물이라도 객관적인 차원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한다면 지금까지 외부에서 단순히 그리워하고 동경하며 피상적으로 생각하며 관찰하는 차원과는 달리, 선(禪) 그 자체에 대한 깨달음의 종교적인 신비성과 묘미(妙味)는 약간 떨어지게 될지 모르지만, 그 깨달음의 사실이나 그 내용에는 조금도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선학은 깨달음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구명하고 누구나가 납득할 수 있도록 분명히 밝혀서 누구나 그러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실천방법과 그 내용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선학의 본질로 하고 있다.

목록
번호        제목
N   선불교의 이해...
56   九. (2) 선의 연구와 비판 II [마지막편]
  九. (2) 선의 연구와 비판 I
54   九. (1) 선의 지식과 체험 II
53   九. 선의 지식과 선의 체험 - (1) 선의 지식과 체험 I
52   八. (5) 자기의 본성
51   八. (4) 구름은 하늘에, 물은 병 속에
50   八. (3) 불법과 도(道)
49   八. (2) 견성의 체험
48   八. 견성성불이란? - (1) 견성이란?
47   七. (6) 지금, 여기의 自己
46   七. (5) 자신을 철저히 비판하고 반성할 것
12345
검색
since 2000-2018 inyeon.org
사이트 소개 | 사이트맵 | 후원 | FAQ | 이메일무단수집 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