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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공양주 보살님방에 가지런히 놓인 두 개의 빗을 보았는데, 참 생소한 물건처럼 느껴졌다. 삭발한 뒤로는 그 물건을 사용할 일이 아주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긴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머리카락을 빗질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아마 빗질할 머리카락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내 본분에 충실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머로 모양에 신경 쓰고 관심을 보인다면 허투루 쓰는 시간이 지금보다 배나 많았을 테다. 그래서 빗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머리 손질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머리처럼 송송한 인연에 얽매인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 성격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빗질을 하고도 남을 텐데, 평생 삭발하고 지내는 맨머리 인생을 살고 있으니 이래저래 잘된 일이다.
평생 필요없는 물건이 어디 빗뿐일까. 출가를 했기 때문에 필요없게 된 물건들이 많다. 복식이 다르므로 멋의 기준도 달라진다. 누더기옷을 입어도 수행자에게는 새로 지은 양복 한 벌보다는 훨씬 값지고 돋보인다.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패션과는 거리가 멀고 옷가게의 옷들도 그림의 떡이다. 그러므로 옷으로 인한 열등감이나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다.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못해 보는 일도 많다. 대표적인 게 결혼식이 아닐까.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를 옆에 세울 일이 없으므로 당연히 아빠와 남편이라는 말도 듣지 못하는 단어이다. 그래서일까? 낙엽이 지는 계절에는 찬바람이 허전한 옆구리로 지나간다.
아마 모르긴 해도 우리 절집안이 최고령 노총각 보유가家일 게다. 팔십을 넘긴 노스님들이 얼마나 많은가. 알고 보면 그분들도 늙은 총각(?)이다. 어찌 보면 장가 안 간 총각들이 대접받고 존경받는 곳이 바로 절집이다. 독신생활은 구차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지만, 스님들의 독신 수행은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독신은 고립이나 일탈된 삶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한 방식일 것이다. 그래서 혼자의 배경은 외롭다는 뜻이 아니라 당당한 자기 실존의 모습이다.
중은 살아서는 갓이 없고 죽어서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다. 수행자의 삶이란 세속의 가치 기준이 아니라는 말 같다. 갓을 쓰지 않으니 명리를 탐하지 않아도 되고, 무덤이 없으니 소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한마디로 무소유의 삶이라는 뜻이다. 알고 보면 머리 손질하는 빗 하나 가지지 않음으로 해서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워진 셈이고, 빗 열 개를 가진 사람보다 더 멋진 헤어스타일을 가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쓰는 빗은 손가락이다.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만질 때마다 수행자임을 깨닫고 세속적으로 길들여지는 마음을 한 올 한 올 가다듬기 때문이다.
('현진스님의 잼있는 스님이야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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