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선이란 무엇을 인식하려는 학문은 결단코 아니다. 이 공부는 오히려 알고 있는 것까지도 털어 버리고 식정(識情)이 고목나무처럼 되어가는 그런 공부이다. ‘비사량처(非思量處)요 식정난측(識情難測)이라’ 사량이나 식정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다 수행하기 좋은 기회는 한 번쯤 주어지는가 보다. 그런데 용기도 모자라고 또한 수행하려는 의지가 부족해서 그만 업장에 끄달려 업대로 한 세상 살다 가는가 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선요(禪要)〉의 고봉(高峰原妙, 1238~1295))스님 말씀에 “만일 이 일의 적실하게 공부함을 말하자면 마치 감옥 속의 사형수가 문득 간수가 술에 취해 졸고 있는 기회를 만나 큰 칼과 수갑을 부수어 버리고 밤새도록 도망갈 적에 길에 독룡과 사나운 범이 많더라도 한결같이 곧장 앞으로만 달리니 마침내 무서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한결같이 간절한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할 적에 과연 그와 같은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백발백중 성취할 것이다. 지금에 명중시키는 이가 있는가! 불자(拂子)로 선상을 한 번 치고서 말하기를 털끝 만치 어긋나도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생기느니라” 하였다.
근세 선종의 중흥조로 추앙 받는 경허스님(鏡虛惺牛, 1846~1912)도 전염병이 떠돌아서 죽음 직전의 공동묘지와도 같은 마을에서 커다란 충격 끝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에 구속되지 않고 조도(祖道)를 찾아 삼계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을 생각해 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靈雲, 위산영우의 제자)스님의 들어보인 바 ‘여사미거 마사도래(驪事未去 馬事到來), 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는 화두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라고 참구하셨다.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오로지 일심으로 참구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 같이 3개월을 순일무잡하게 화두를 들었다.
요즈음도 선방에서 간혹 어떤 수좌가 경허의 흉내를 낸다고 칼을 갈아 턱에 괴는데 졸음이 오면 다시 정신을 수습하든가 아니면 조금 찔리든가 해서 좀 용맹스럽게 정진을 해서 터지든가 어떻게 하든가 할 일인데 졸리면 칼을 옆으로 비켜 세운다. 그러니 봉사 잠 자나마나다. 그렇게 대용맹정진 끝에 폐침망찬(廢寢忘饌) 잠도 밥 먹는 것도 잊은 대무심지(大無心地)의 경지에서 ‘소가 코가 없다’라는 말에 경천동지의 대오(大悟)를 한 것이다. 판사에서 출가한 효봉(曉峰) 큰스님, 종무소 소임을 보다가〈화엄경〉의 게송에 격발된 선사(先師) 경봉(鏡峰) 큰스님도 이런 한 번쯤 찾아온 기회를 용맹정진으로 성취한 근세의 선지식이 아닌가 한다. 거기에는 자기만의 대단한 결단력과 목숨을 건 정진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리라.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
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