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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4일(음 5월27일)은 우리 스님(경봉대종사)의 기일(忌日)이다. 벌써 22주기를 맞는다. 노사는 평소 알아듣기 어려운 선법문(禪法門)이나 옛 선사들의 어록을 답습하지 않고, 당신의 안목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쉬우면서도 의미 깊은 법문을 남기신 선지식으로 유명하다.
노사께서는 1925년 통도사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 회장이 되어 극락암 무량수각에서 낮에는 화엄경 산림 설법을 하시고 밤에는 용맹정진 하시더니, 마침내 36세인 1927년 11월 20일 한밤중인 삼경(三更)에 바로 이 곳 삼소굴에서 촛불이 춤추는 광경을 보고 대도를 성취하셨다. 낮에는 설법 밤에는 정진하시는, 이런 흔하지 않은 수행으로 출가 후 20년 만에 찾아온 장엄한 오도의 소식이었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 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발화 꽃 빛이 온누리에 흐르누나(我是訪吾物物頭 目前卽見主人樓 呵呵逢着無疑惑 優鉢花光法界流).”
이번 기일에는 특히 그 동안 장인(匠人)을 만나지 못해 미루어 오던 ‘한 가지 큰 일’을 할 생각이다. 지난 겨울부터 큰스님 영정(影幀) 봉안에 문도들의 의견이 모아져서 삼소굴(三笑窟)에 영정을 봉안하는 일이 바로 ‘한 가지 큰 일’이다. 스님께서는 생전인 1966년 9월 어느 날 스스로 찬(贊)하셨다. “한 떨기 연꽃 그림자 거울 봉우리에 드리웠네 / 연꽃과 경봉 아무 거리낌 없이 다만 이러할 뿐 / 마음 빛 돌이켜 비추는 곳에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도다 / 이러한 도리 그 누가 알리! 내일 다시 와서 / 야반삼경에 촛불 춤추는 것을 볼지어다. 미소할 뿐!(一朶芙蓉 影落鏡峰 / 芙鏡無碍 祇是恁 / 回光照處 天玄地黃 / 誰知如此 更來明日 / 夜看燭舞 )”
극락선원에는 일찍이 스님께서 소변소에는 휴급소(休急所), 대변소에는 해우소(解憂所)라고 써 붙이셨다. 소변을 보고서야 다른 일 보듯이 급한 일일랑 쉬어가면서 하라는 뜻이다. 또 해우소라는 말은 근심 걱정과 모든 고뇌를 대변과 함께 말끔히 버리라는 말씀이리라.
지금은 전국의 사찰이나 민속촌에도 널리 쓰이지만, 스님께서 처음 쓰실 때만 하더라도 근심걱정 털어놓는 신앙상담실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고개를 갸우뚱하곤 하였다. 또 스님은 80세가 지나서도 항상 아침 일찍 냉수 마찰과 도량 포행을 한 번도 거르지 않으셨다. 이러한 점은 통도사의 가풍이 되어 지난해 겨울 훌쩍 열반에 드신 월하(月下) 방장스님께도 이어졌다. 시자 없이 손수 빨래를 해 입으신 점이나, 와병(臥病) 전만 하더라도 통도사 정변전(正殿) 산책코스를 즐겨 포행하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처음 입산을 선방으로 했는데 큰스님의 시자가 되어 선지식을 모시는 행운을 얻었다. 요즈음도 결제에 들어 큰 방에서 선원대중들과 함께 정진하고 있노라면 법은(法恩)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생전에 노사는 극락선원을 한강이남에서는 최고의 선원터라고 좋아하셨다. 이번 노사의 기일에도 역시 극락암 영지(影池) 못에는 영찬(影讚)에 그랬듯이 수련(水蓮)이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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