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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조계사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부 잘 하기로 소문난 어느 수좌의 경험담이다. 나이가 듬직한, 풀옷을 빳빳이 해 입은 어떤 보살은 스님에게 대뜸 여쭈기를, “스니-임 오대산에 갈려면 어떻게 가야 합니까?” 스님이 동북쪽을 가리키며, “저 쪽으로 곧장 가시면 됩니다.” “스님 그 손가락 없었으면 어떻게 가리켜 주실랍니까?” 갑자기 한 대 얻어 맞은 스님은 머리만 긁적긁적 했더라는 이야기다. 이 때만 하더라도 선지식 스님들이 산중마다 사자후를 토하시던 때였는데, 길 가다가도 신도를 만나면 스님들이 옷깃을 여미고 다닐 그런 시절이였다. 조사어록이나 지대방 한담에서도 자주 소개되곤 하지만,〈금강경〉전문가 주금강(周金剛, 나중의 덕산스님)을 혼내준 떡장수 할머니나, ‘파자소암(婆子燒庵)’ 공안에 등장하는 할머니 등을 보더라도 훌륭한 도인을 배출하기 위한 부처님의 사자(使者)나 원력시현(願力示現)으로 볼 수 있는 일화들이다.
오늘은 영축산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각 산중마다 대보살들이 스님들의 건강과 뒷바라지를 맡아 수고하던 시절이 있었다. 극락선원에는 60년대 후반부터 법계화(法界華) 보살이, 비로암에는 법왕화(法王華) 보살이 스님들의 정진을 뒷바라지하고 있었다. 통도사 본사에는 대법행 보살, 고불심 보살 등이 보살선원에서 참선하면서 물심양면의 뒷받침을 해온 것은 모두 아는 일이다. 큰스님 시봉을 위해 법계화보살은 고향인 평택에서 내려와 계셨고, 밀양이 고향인 법왕화보살은 어씨(魚氏) 집안의 맏며느리였다. 판사집안과 혼인한 보살은 자긍심이 남달리 셌다. 공부를 잘 하는 선방수좌들은 이들에게 지극한 공경을 받았지만 아침예불을 거르거나 정진에 나태한 수좌들은 혼이 나기가 일쑤였다. 법왕화는 공부 잘못하는 수좌 등에 일부러 업혔다가 양쪽 귀를 사정없이 당겨서 공부 잘하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놓아 주었다. 이후에 공부를 잘 하면 맛있는 간식을 배려하곤 하였다. 이 시절에 적어놓은 나의 일기, “84년 8월 16일 목요일 맑음. 법왕화 보살, 점심 때쯤 영면(永眠)하시다.”라고 되어 있다. 오랫동안 산중에 계셨던 분인지라 49재에는 사부대중과 함께 통도사 방장이신 월하 큰스님께서도 참례를 하시고 법문까지 내려 주셨다. 법계화 보살은 이보다 1년 앞서 열반에 드셨다. 마치 큰스님을 뒤따라가듯 하였으니 참으로 숙세의 선근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한 가지 재미난 일화. 노사께서는 법상에서 자주 “금일 설법이 설법이 아니라 그 이름이 설법이요, 반야바라밀이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로다.”라고 하셨다. 어느 날 조실방을 찾은 어떤 보살이 친구들과 함께 와서 “금일 설법이 설법이 아니라….” 하고 큰스님 설법 흉내를 냈다. 화가 난 시자들이 내쫓아 버리려 하여 떠들썩해 지니까, 쪽문을 드르륵 여시고는 스님께서 “누구고? 너그들 왔구나, 내 그런 줄 알았다. 이리 들어오이라!” 하시는 게 아닌가! 격의 없는 선사의 일면을 보게 하는 구절이다. 이 때가 아마 70년대 말이였을 게다. 그날 스님 방에 들어가 혼이 나는 대신 차를 맛있게 대접받은 모양이다.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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