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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의 출가이야기 시리즈를 다 읽었는데, 스님 이야긴 없던데요.”
법보신문 김민경 부장이 전화를 했습니다.
“그거 뭐 할낀데요?”
“우리 신문에 스님들의 출가 이야기를 다루는 코너가 있는데, 거기에 쓰게요.”
“그래요? 거참…”
“왜 그러세요?”
“아, 쑥스러워서 그렇죠. 뭐…”
“아무나 대상이 되는 건 아니예요.”
김 부장은 선심 쓰듯 말을 합니다. 물론 법보신문에서는 제게 ‘특혜’를 준 것 같습니다. 김 부장의 다음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중진급 스님들만 취재해요.”
중진급이라면 일반적으로 승랍(僧臘)이 20년 이상 된 스님들을 말하는 겁니다. 승랍 20년을 채우지 못한 제게 기회를 주는 것은 청문회거리가 되는 특혜인 셈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그냥 마지못한 척하며 응낙하는 게 좋습니다. 내용은 차치하고 남들은 특혜를 못 받아서 안달인데 그냥 굴러들어온 특혜를 마다하는 건 바보이기 때문이죠. 이럴 경우, 저의 변변찮음이 만천하에 드러나 망신당하게 되는 것쯤은 감수해야 합니다. 오로지 바보가 아니란 걸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죠. 공짜라면 뭣도 마신다는 ‘무대포 정신’으로 말입니다.
재가불자를 포함한 일반인들에게 뭐든 물어보라고 하면 제1순위가 “스님은 왜 출가하셨어요?”입니다. 그러한 질문의 배경을 살펴보면 뭔가 ‘기막힌 사연’이 있거나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게는 그러한 사연이 없습니다.
▶ 저는 어릴 때 꿈이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통령이나 장군이 되겠다거나 사장 따위를 흔히 꼽았었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그런 시답잖은 걸 해서 뭘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가족들끼리만 있을 때는 전혀 문제가 안 되던 것이 외가에서 어른들이 오셨을 때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양반의 후예였던 외삼촌들은 한번씩 어머니를 만나러 오셨는데 저는 어김없이 그분들 앞에 꿇어앉아야 했었고 외삼촌들의 일장훈시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니는 장손이니까 집안을 일으키야 되고 커서는 부모님을 편안하이 모시야 되고 그랄라모 공부를 잘해야 되고….”
이런 일장훈시에 앞서서 그분들은 어김없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니는 장차 뭐가 될끼고?”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것이 없었던 저는 진땀을 흘리며 우물쭈물하게 되는데 그걸 지켜보시던 외삼촌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말씀하십니다.
“장차 뭐가 될지 생각도 안했다는 말이가?”
그런 저는 ‘싹수가 노란 놈’으로 찍혀있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삐쩍 말라있어서 어른들에게 적잖게 걱정스런 존재였습니다. 밖으로 뛰어다니며 활기차게 놀지도 않았고, 그저 방구석에 박혀 생각만 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제 앞자리에는 고아원에서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녀석은 열성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이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점심식사시간이 되면 그 친구와 짝은 뒤로 돌아앉아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 친구는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그 친구의 기도를 무시한 채 밥을 먹곤 했었지요.
1977년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하복을 입었던 기억이 나는 걸로 봐서는 하절기였던 것 같은데, 수업을 마치고 뭉기적거리다가 우연히 종교논쟁이 붙었습니다. 발단은 그 녀석이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았던, 경상도 말로 ‘골수 예수쟁이’였던 그 친구는 하고한 날 교회에 다니라고 꼬시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그 친구가 먼저 교회이야기를 끄집어냈고 그 친구와 대적해서 제가 논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말했습니다. 이 세상을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했고 인간도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그런 이야기 정도야 일반상식에 해당하는 것이라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이 세상은 부처님이 만든 것이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당시에 저는 절에 다니지 않았을 때였는데 그래도 불교를 믿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은 친척 할머니 한 분이 당시에 절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불공이 있는 날에는 스님을 모셔서 불공을 드린다는 말씀을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보살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집 식구들은 신심이 그다지 깊지 않았던 듯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초파일에는 할머니 손잡고 그 절에 올라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무튼 그러한 영향으로 저는 불교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세상을 창조한 분이 부처님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공부를 했던 기독교인과 불교를 전혀 모르는 제가 벌였던 이 논쟁은 시간이 가도 식을 줄 몰랐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청소를 마친 청소당번 아이들까지 합세하여 이 편 저 편으로 나뉘어 열띤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논쟁이 끝난 것은 시간이 꽤 지난 뒤 다른 아이들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대화를 읽는 법은 영화 ‘친구’에서 나왔던 찐~한 부산 사투리 버전으로 읽으셔야 제 맛이 납니다.
“니 불교에 관심 있나?”
“와?”
“불교학생회라 카는 기 있는데 우리는 거기 다닌다. 니도 가자.”
처음 들었습니다. 불교학생회가 있다는 것도, 그 모임을 법회라고 한다는 것도. 그 친구들과 함께 법회라는 데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20명이 채 되지 않는 숫자였는데 그 중 반 가량은 여학생들이었고 선배들도 있었습니다. 잠시 후 까만 승복을 입은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넘긴 법사님이 오시면서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선배가 목탁을 쥐고 염불을 하며 법회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법사님은 옛날에 스님이었다는 추전(秋田) 선생이었습니다. 첫날 천수경을 강의하셨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추전 선생은 서예의 국전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작년이었던가, 인사동 지대방에서 그의 대나무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매주 빠짐없이 법회에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어떤 일에도 열정이 없었던 저였지만 열정을 바칠 곳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던 중 선배 한 명이 목탁을 제게 가르치면서 법회의 진행을 맡겼습니다. 목탁을 치게 된 저는 뒷자리에 있을 때와는 자세가 달라져서 책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청년회 회원들과 함께 참석했던 수련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수련회는 밤을 꼬박 새는 철야법회였습니다. 저녁 8시경에 시작하여 다음날 오후 2시까지 독경도 하고 1,080배도 하고 참선도 했었습니다. 이슬에 옷이 젖듯 저는 서서히 불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3학년이 되어서도 그 열정은 식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막연하게 스님들의 생활을 동경하게 되다가 점차 스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그 뒤에는 당연히 스님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불교와 인연이 없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72년이었을 겁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흑백사진으로만 봤던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도 그때 처음으로 보았고 첨성대와 포석정도 기억의 창고에 남아있습니다.
불편한 잠을 잤던 허름한 기와집 여인숙 앞에 리어카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30원인가를 주고 석고로 만든 불상을 하나 샀습니다.
그 불상을 마루 선반위에 올려두고 아무도 없을 때면 혼자 절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중학교 다닐 때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할머니가 천을 떠다가 잠옷을 만들어 입혀주셨는데 세로 줄무늬가 있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면 회색으로 보였습니다. 몇 년 입게 만들 요량으로 할머니는 품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셨는데, 그걸 입혀놓고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따, 그 놈 꼭 중 같네.”
왠지 그 소리가 듣기 좋아서 한동안은 날마다 그걸 입고 집안을 돌아다녔습니다. 잠옷이 아니었다면 멧등에 올라갈 때도 그걸 입고 다녔을 겁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75년에는 국어 담당 교사가 이홍걸 선생님이셨는데, 그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부처님 이야기와 큰스님들 이야기를 자주 해 주셨습니다. 한번은 통도사에 계셨던 구하 스님을 친견했는데 그 스님의 눈에서는 파란 빛이 나더라는 이야기며, 신도들이 몇 명이 언제쯤 절에 오는지 미리 맞추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온 몸이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하던 경지를 지나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 되곤 했었습니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서, 출가의 꿈을 새록새록 키워오던 어느 날 이젠 더 망설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가해서 스님 노릇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마치 스님이 되기 위해 태어났고, 또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온종일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릴 게 있다고 해서 어느 날 밤 단 둘이 마주앉았습니다. 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예…, 저예… 출가할랍니더.”
“어? 머라꼬?”
“절에 들어간다꼬예…”
절에 열심히 다니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된 줄 모르셨던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아무런 말씀도 없이 긴 한숨을 쉬시더니 말씀하십니다.
“니 와 그라노? 내가 니한테 뭐 잘몬한 거 있나?”
눈물을 글썽이시며 반쯤은 우는 듯 애절하게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아… 아입니더. 그래서 절에… 갈라카는 기 아이고예….”
아버지는 터지려는 울음을 막아보려는 듯 단호한 어조로 제 말을 자르고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니 중되모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나? 그라고 세상에서 중들이 얼마나 천대받는데 니가 중이 될라카노. 니가 머할라꼬? 머가 답답해서 중될끼고? 생각 바까라!”
“아버지가 몰라서 그렇습니더. 안 그렇습니더. 훌륭한 스님들이 얼마나 많은데예.”
“시끄럽다! 오늘은 고마 자라. 내일 이야기 하자!”
아버지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밤을 꼬박 새우신 뒤 다음날 아침에 제 방에 오셔서는 밑둥을 잘라낸 나무가 무너지듯 방바닥에 주저앉으시며 다짜고짜 통곡을 하십니다.
“아이고, 우야꼬! 차라리 나를 직이고 가라. 내 나놓고 절에 간다꼬? 니 절에 몬간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1984년 사월 초파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왔다고 텔레비전에서 생중계하던 그날 연등에 촛불을 켜던 그 순간에 어머니는 이 사바세계를 떠나셨습니다. 암이었습니다.
다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젠 어느 누구도 저의 출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 스님 될 운명을 타고 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는 운명론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구요? 맞습니다.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조건이 만났을 때 뭔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인연인데 일반적으로는 그걸 다소 막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인과론인데, 원인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겁니다. 자신이 스님이 될 원인을 만들고 그 결과로서 스님이 된다는 거죠.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생에 세운 강한 염원(念願)은 다음 생에 그것을 이루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생이 끝날 때 다음 생의 출가를 강하게 염원한다면 영혼은 스스로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갈 것이고 깊은 의식 속에 내재된 의지가 다음 생에 드러나게 된다.”
어렵다구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꿈은 이루어진다. 반드시.”
글. 한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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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