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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 [불교교리강좌] 삼법인 강의 (13) - 원증회고(怨憎會苦)와 구부득고(求不得苦)
     6) 원증회고(怨憎會苦)

원증회고는 애별리고와 반대되는 괴로움으로 싫어하는 것이나 싫어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괴로움을 말한다. 싫어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란 얼마나 큰 괴로움인가. 싫은 것, 나쁜 것, 보고 싶지 않은 것, 더럽고 추한 것, 하기 싫은 것, 춥고 더운 것 등의 온갖 싫어하는 것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정신이 느끼는 가장 큰 괴로움일 것이다.

군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예로 들어 보자. 군대에서 정말 싫고 미운 선임병과의 생활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괴로움으로 몰아넣고 있는가.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밉고 증오스러운 직장상사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함께 생활해야 하고, 잘 보이려 애써야 하고, 심지어 집에 있는 처자식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이고 때로는 아부도 떨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고통을 넘어 자괴감까지 생겨난다.

때로는 결혼생활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남편에게 고통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식 때문에, 혹은 용기가 없어서, 혹은 그런 삶에 이미 익숙해짐으로써 그 죽을 것 같은 고통의 결혼생활을 끝끝내 죽을 때까지 이어가는 가족들도 있다. 심지어 남편을 악마처럼 느끼며, 아내를 소름끼치는 존재로 생각하면서도 그런 삶을 기어이 살아내야 하는 괴로움도 있다.

싫어하는 사람 뿐 아니라, 싫어하는 직장생활, 싫어하는 직업, 싫어하는 공부, 싫어하는 상황과 인연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도 있다.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인도, 아프리카, 북한 등의 제3세계 국가에서는 전쟁과 기아와 굶주림으로 인해 하루에도 3만 5천명 가량의 5살 미만 어린아이들이 죽어간다고 한다. 끝없이 전쟁의 고통과 함께 해야 하고, 하루하루 먹고 살 끼니 걱정에 시달려야 하며, 전염병과 각종 질병의 고통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고, 자연환경적으로도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저주받은 땅에서 아무리 싫어도 버텨내야 하고, 아무리 괴로워도 살아내야 하는 그런 이들의 원증회고는 그야말로 죽음과 다름없는 고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환경생태적인 위기 속에서 원증회고는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각종의 오염된 환경과 함께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하는 괴로움, 그리고 그러한 환경적 괴로움은 급기야 환경적 재앙으로까지 오늘날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오염된 물, 오염된 공기, 오염된 땅, 오염된 음식, 오염된 문화, 오염된 몸 등 온갖 오염된 것들이 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산업사회의 현실이다.

오염된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오염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오늘날의 환경오염은 도시나, 선진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이 지구의 어느 곳으로 피해 이사를 간다고 하더라도 환경오염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오염은 전세계적인 기상이변을 속출하게 함으로써 세계인들에게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음을 하루가 다르게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현대의 환경오염을 넘어 환경 재앙의 시대를 살면서 오염이라는 문제, 기상이변이라는 문제는 아무리 싫어서 멀리 떨어지고 싶다고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괴로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환경위기 시대의 대표적인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상에서처럼 원증회고란 우리 삶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나타나 우리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어쩌면 일상적인 삶에서 가장 표면으로 드러나는 대표적인 괴로움의 형태가 바로 원증회고일 것이다.


    7) 구부득고(求不得苦)

구부득고는 구하고자 하지만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으면 그것에 만족하기 보다는 또 다른 바라는 바를 만듦으로써 만족보다는 욕구를 선택한다. 좋아하는 사람, 물건, 재산, 명예, 권력, 지위, 출세, 행복, 건강 등 나의 아상을 확인시켜주고 달콤하며 편안한 모든 것들을 얻고자 하고 바라지만 마음대로 구할 수 없는 데서 괴로움은 시작된다. 그야말로 끊임없는 인간 욕구를 다 채울 수 없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사람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구하며 얻고자 한다. 한 가지 욕망이 충족되면 거기에 대한 만족은 잠시 뿐이고 또 다른 새로운 욕망이 새로운 것을 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욕망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다가, 결국 단 한 번도 얻고자 하지 않았던 죽음의 순간이 찾아온다. 죽기 직전까지 욕망 추구의 삶은 계속된다.

이 세상은 사람이 얻고 싶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저마다의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은 끝도 없는데, 이 세상은 한정되어 있으니 어찌 구하고자 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끝까지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어찌 되었든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쓴다. 그 모든 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아상(我相)에서 온다. 아상과 아집이 있는 이상, 인간의 욕망 추구의 삶은 끝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가 있고, ‘내 것’이라는 아집이 있는 이상 ‘내 것’을 늘려 나가려는 욕망은 멈출 수 없다. 그러나 ‘내 것’을 늘려나가려는 끝없는 욕망이 있는 이상 구부득의 괴로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진리의 모습이다.

우리의 얻고자 하는 욕망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를 보라. 인간은 건강한 삶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과 식습관에 길들여져 있다. 건강한 몸을 이루고자 하면서 입맛에만 길들여진 잘못된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다. 튼튼한 몸을 꿈꾸면서 몸을 움직이기 싫어 운동도 노동도 포기하고 만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서도 정작 자기집착과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맑고 청량한 공기와 자연환경을 얻고자 하면서 동시에 물질적인 풍요와 개발과 발전에서 오는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숲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산을 깎아 아파트를 짓는 것에 쉽게 동의한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대형할인매장이 들어오는 것을 한단계 높아진 문화생활이라고 열광한다. 서로 상반된 두 가지를 동시에 얻고자 하는 어리석은 욕망의 실체를 보라.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들인가. 인간은 두 가지 모두를 얻고자 하지만 현실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런 모순을 알면서도 결코 그 두 가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구부득고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구부득고는 이처럼 더욱 커지고 있다. 옛날 같으면 그저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되어도 행복이라 느꼈지만, 이제는 기본적인 입고, 먹고, 자는 것만 해결되는 것을 가지고 행복이라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기본적으로 차도 있어야 하고, 노후자금도 모아 놓아야 하고, 대학도 나와야 하고, 컴퓨터, TV, 오디오 등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생활필수품이 수도 없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산업의 발전은 수많은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양산해 내었고, 그로 인해 인간의 욕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고 있다.

옛 사람들의 소박하고 조화로운 삶의 관점에서는 얻고자 하지만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구부득고가 적었으나, 오늘날과 같은 개발과 발전의 시대에는 얻고자 하는 것의 물량이 너무 많다보니 그것을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구부득고의 괴로움도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업의 발전과 개발이 가속도를 낼수록 인간의 구부득고라는 괴로움의 크기도 정비례하며 커져 갈 것이다.

구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괴로움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 나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과 자족을 가지지 않는 이상 구부득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구한다는 것, 얻고자 한다는 것은 곧 지금은 부족하다는 결핍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고통일 수밖에 없다. 물질을 얻고자 하면 물질로 인해 고통 받고, 사랑을 얻고자 하면 사랑으로 인해 고통 받으며, 심지어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깨달음으로 인해 고통 받는다. 무엇이든 얻고자 하는 것은 곧 괴로움을 가져온다.

사실은 지금 이 자리야말로,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지금 내가 가진 것 그대로, 지금 이 상황 이 소유 그대로야말로 최고의 순간이며, 최선의 선택이고, 법계라는 진리의 부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최상의 순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상 구부득고는 언제까지고 나를 괴롭힐 것이다.



글 _ 법상스님, 목탁소리 http://www.moktakso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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