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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 [불교교리강좌] 삼법인 강의 (11) - 생고(生苦)와 노고(老苦)
괴로움의 종류 - 사고팔고

이처럼 무상하고 무아인 것은 언제나 (苦)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이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표적인 괴로움을 불교에서는 사고(四苦), 팔고(八苦)로 분류하고 있다. 즉, 사고(四苦)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괴로움을 말하고, 여기에 다시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를 포함시키면 여덟 가지의 괴로움인 팔고가 되는 것이다. 사고팔고를 하나 하나 살펴보자.

    1) 생고(生苦)

첫째는 생고(生苦)로, 언뜻 생각해 보면 태어나는 것이 어떻게 괴로움일까 싶지만 가만히 사유해 보면 생(生)이야말로 노병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태어나기 때문에 존재의 모든 괴로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업(業)에 의해 태어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즉 육도(六道)를 언급하면서 정각(正覺)을 얻는다는 것은 곧 육도윤회의 끊임없이 돌고 도는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설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끊임없이 업에 따라 육도에서 태어나고 죽는 반복적인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이제는 더 이상 태어남을 받지 않는 육도를 완전히 초월한 경지를 바른 깨달음, 정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대로 생고라는 말에서 유추해 보건대 태어남을 더 이상 받지 않았을 때 완전한 열반에 이른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그러니 태어남이야말로 육도윤회라는 중생세간의 원인이요, 노병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노병사를 비롯해 팔고 중 나머지 일곱 가지 괴로움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데에도 생의 괴로움이 있지만 태어남 그 자체 또한 고통임을 경전에서는 말하고 있다.

『중아함경』「분별성제품」에서는 “태어남의 고통이란, 이른바 중생이 태어날 때 온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받고 두루 느낀다는 것으로, 태어날 때는 몸과 마음이 뜨겁고 번뇌하며 근심하면서 두루 고통을 받고 느낀다. 이것이 태어남의 고통을 말하는 이유이다.”라고 설하고 있다. 이처럼 태어나는 순간 몸과 마음은 열과 번뇌와 근심으로 큰 고통을 두루 받고 느낀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전하고 의술이 발전된 시대에도 생고는 없어지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태어남의 고통은 옛날보다 한층 더하다. 우선 낙태율을 보더라도, 갤럽조사기준 자료에 의해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서 한 아기가 태어날 때 약 2.5명의 태아가 죽어간다고 한다. 한 해에 약 6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나고 150만 명의 태아가 낙태당하는 것이다.

이런 조사만을 보더라도 탄생이라는 성스러운 일이 현대 의학과 인간의 어리석음과 삿된 정신에 의해 죽음의 괴로움으로 바뀐 현실을 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태어남이 단순한 괴로움이 아니라 죽음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농부와 산과의사』라는 책에서는 요즘 산부인과가 분만을 할 때 과도한 촉진제 및 진정제 투여, 옥시토신 투여, 마취제 투여, 회음수술, 제왕절개와 같은 의료적 개입으로 인해 오히려 자연스러운 분만을 어렵게 만들며, 태아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산업적 출산의 문제점들은 너무나도 큰 탄생의 괴로움을 안겨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의학이 발전하고 산업적인 출산의 계속되면서 오히려 탄생은 더욱 큰 괴로움으로 변해버렸다.

이뿐 아니라 현대의 사회에 있어 태어남의 문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괴로움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로 비약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인구증가의 문제는 모든 환경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만하다. 사실 수렵과 채집에 의해 살아갔던 원시 시대에는 인구가 많지 않아 지구가 충분히 먹여 살리고도 남을 만큼 자원이며 먹거리가 풍부했고 거의 환경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농업이 발달함과 동시에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 이후로 도시와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구증가는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세계의 3대 핵심 지역에서 농업이 시작될 무렵의 세계 인구는 약 400만 명이었지만, 농경의 확산으로 더 많은 사람을 부양할 수 있게 되자 인구가 꾸준히 늘어 1,600년 경에는 5억 5000만 명이 되었으며,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과학기술과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욱 빠른 속도로 늘기 시작해 1825년에 10억을 넘어섰고, 1930년경에는 20억명, 1960년 경에는 30억명, 1989년에는 45억명을 넘어 현재 약 60억을 넘어서는 등 인구 증가 추세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간이 환경문제를 일으킨 원인제공자란 측면에서 이렇게 증가하는 인구는 또 다른 수많은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인구의 환경적 괴로움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생의 문제는 개개인의 괴로움의 문제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만 요즘 같이 세계적으로 환경문제가 인간고에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 인구증가라는 문제는 또 다른 인간고의 악순환을 가져다주고 있다.

요즘 사회에서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인구를 늘리는 정책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조금 더 친환경적이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생각했을 때, 또 인류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오히려 인구는 세계적으로 더 줄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인구가 늘어나면 그만큼 그 인구를 먹여 살리고 그 인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환경파괴와 개발, 발전이 늘어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곧 인류의 고통과 멸망을 앞당기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억지로 인구를 줄일 수는 없겠지만, 지구가 소화해 낼 수 있는 인구가 한정되어 있는 마당에, 더욱이 인간의 욕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치솟고 있는 마당에,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인구를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로, 또 나라를 먹여 살릴 사람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인구를 늘리려고 애쓰는 일은 아무래도 억지스러워 보인다.

어찌 태어남을 고(苦)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개별적으로 인간이 태어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괴로움이며, 그것 자체가 이미 노병사의 괴로움을 품고 왔다는 데서 고통이라 아니 할 수 없으며, 나아가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인간의 태어남은 곧 지구 전체의 괴로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 노고(老苦)

둘째는 노고(老苦)로, 늙는 것은 괴로움이란 뜻이다. 늙어가는 것, 죽어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 있는 존재에게 있어 얼마나 큰 괴로움인가. 역사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늙지 않으려고 애를 써 왔고, 불노장생의 꿈을 꾸어 왔지만 인류 역사상 단 한 사람도 늙음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들의 늙지 않기 위한 염원을 반영하듯, 세상에서는 온갖 의학과 과학적 지식을 총 동원하여 늙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고 온갖 노화방지 약품과 물질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나아가 젊어지기 위한 온갖 종류의 성형수술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늙지 않으려는, 늙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피나는 노력이겠지만 그 모든 노력은 삼법인이라는 진리 앞에서 허망한 짓이 되고 만다. 누구나 늙을 수밖에 없고, 나이 들어 갈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무상하여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그 어떤 사람에게도 젊음은 고정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 무아의 이치이다. 늙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노고(老苦)다.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노망이다. 삼법인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자는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에게 늙어간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도 진리다운 여법한 삶의 모습이다.

사실 늙어가는 것, 썩어가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늙고 썩지 않는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사람은 늙어가고, 물질은 썩어가고 부식되고 부패되어 감으로써 이 세상은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우리들 또한 새로운 삶의 준비를 위해 다음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것이다.

하기야 요즘의 시대는 늙은 사람이 이 사회에 온전히 설 수 없는 처량한 시대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나이 든 어른이 있어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지혜가 부족할 때에는 항상 어르신의 삶의 지혜를 배우며 살아갔다. 나이가 들더라도 죽기 전날까지 온 몸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고, 내 스스로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갔다. 계절의 운행에 맞춰 농사짓고, 지혜를 키워가며,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산 어르신들은 수행자의 그것처럼이나 지혜가 밝고 총기어린 그 마을의 정신적인 지도자였다. 인생의 이치를 받아들이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삶의 모습 속에 늙지 않으려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노망스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시골을 버리고 죄다 도시로 떠나면서 도시 노인들을 갈 곳도 잃고 일터도 잃었다. 경제발전과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층은 두터워졌고, 각종의 노인문제, 노령화 문제를 안게 되었다. 도시의 어른들은 경제적 고충과 고독감, 무력감, 병고 등으로 인해 더욱 괴로워지고 개인주의적이고 서구적인 문화가 도입되면서 노인 공경과 봉양의 윤리적 가치는 사라졌으며,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의 분화는 독거노인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더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어리석은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내고, 늙는 괴로움을 더욱 더 아프고 괴로운 것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어차피 우린 누구나 늙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늙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다. 이 세상의 진리는 무상과 무아라는 이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식은 늙어가는 것을, 변해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완전히 수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불교적인 섭수(攝受)의 수행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라. 존재의 소멸을 인정하라. 늙어감을 수용하고 나이듦의 지긋한 향기를 즐기라.

앞에서 어리석은 중생의 눈에는 일체개고가 지혜로운 부처의 눈에는 열반적정으로 바뀐다고 했다. 어리석은 중생의 눈으로 보면 늙어가는 것은 분명 괴로움이지만, 지혜로움에 눈 뜬 수행자의 눈에 늙어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애써 거부해야 할 것이 아니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지 다른 때가 아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젊음도 아니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부유한 노후도 아닌 다만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수행자에게 늙음은 없다. 다만 매 순간 순간 새롭고 빛나는 삶이 있을 뿐이고, 우리는 날마다 그 새로운 순간을 새롭게 살아내면 될 뿐이다.



글 _ 법상스님, 목탁소리 http://www.moktakso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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