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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판이란 교상판석(敎相判釋)을 약칭하여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이는 부처님이 일생 동안 설한 가르침을 분석하여 그 성격에 따라 시기적으로 분류한 방법론을 말한다. 그런데 이는 요즘과 같은 문헌학적인 연구가 전무했던 중국에서 불교의 모든 경전을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이라고 간주하고, 오로지 그 가르침에 나타난 성격의 차이와 혼란을 납득할 수 있게 정리하기 위해 문헌학적인 비판이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중국 독자의 문헌조작이라고 혹평되기도 한다.
이는 이미 18세기 전반기의 사람이었던 일본의 부영중기(富永仲基)에 의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되었고, 이로 인해 새삼스럽게 대승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쟁점화되었음을 제29문에서 소개한 바 있다.
부처님의 설법으로 표출된 불교의 교설은 원시불교의 성전을 시초로 하여 부파불교를 거쳐 대승불교로 이어지면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 결과 서로간에 다른 양상을 노출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객관적으로 봐도 거의 모순되는 듯한 교설이 같은 부처님의 설법인 양 주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거기에는 부처님의 교설이라는 권위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함부로 해석할 수 없다는 제약이 뒤따랐다. 본래 부처님의 설법은 깨달음의 내용을 정형화해서 설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수준이나 입장에 따라 그대그때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을 소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 하고, 바로 이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제11문 참조). 다양한 방식을 구사한 대기설법은 가르침의 내용을 신자들의 체험이나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여, 일상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면에서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면이 후대에 성립된 불교성전의 일반적인 특징을 이루는데, 특히 대승불교에 있어서는 교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야기하여, 진실과 방편 또는 진제(眞 )와 속제(俗 )라는 입장으로 정리되었다. 즉, 부처님의 진리로 표현된 것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렇듯 다양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가(自家)의 입장에서 통일하려는 노력이 교판이라는 방법론을 낳았다. 다시 말하면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듯한 교설들을 정리하기 위해, 부처님이 의도한 바나 주장하는 바, 설법을 하게 된 동기, 또는 설법의 때와 장소를 설정하고, 여러 경전들이 각각의 순서에 따라 어떻게 부처님에 의해 설해졌는지를 체계화함으로써 분석자가 지향하는 특수한 입장으로부터 문제를 해석학적으로 처리하고자 한 것이 교판이다. 따라서 이 교판은 분석자가 처한 사상적, 교학적, 실천적 입장의 존재 의의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실제 중국에 있어서의 교판은 한문으로 번역된 경전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부처님이 성도한 후로부터 입멸하기까지 45년의 각 연대에 주요 경전들을 분류하여 배당하였다. 그리고 이 경전들에 대해 다시 가치 판단을 내린다. 오늘날엔 교판의 대명사격으로 중국 천태종의 소위 '오시팔교(五時八敎)'라는 것이 유명하지만, 중국에서의 교판의 역사는 상당히 뿌리가 깊다.
이는 인도와는 달리 역사적 전통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현실주의적 발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미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부터 교판은 시작되었는데, 법운(法雲)이라는 승려가『법화경의기(法華經義記)』에서 천명한 오시설(五時設)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는 먼저 불교의 모든 교설을 점교(漸敎)와 돈교(頓敎)로 구분하고, 점교를 다시 유상교(有相敎, <阿含>)·무상교(無相敎, <般若>)·억양교(抑揚敎, <雜摩>)·동귀교(同歸敎, <法華>)·상주교(常住敎, <涅槃>)의 오시로 구분하였다[<>안은 대표적인 경전을 예시한 것이다].
그의 교판은 모든 교설을 초보적인 것에서 고차적인 것으로 파악해 나가는 입장을 취했다. 이를 중국 천태종의 창시자인 지의(智 )가 채용하여 발전시켰다. 그래서 중국의 교판이라 하면 흔히 지의를 먼저 떠올리지만, 이를 실제 오늘의 모습으로 완성시킨 이는 중국에서 천태학을 공부한 고려의 제관(?觀)이다. 그는 불후의 저작인『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에서 다음과 같은 오시교판설을 완결하였다.
① 화엄시(華嚴時) : 성도 후의 21일 동안 설함 -『화엄경』
② 녹원(鹿苑時) : 이후 12년 동안 -『아함(阿含)』
③ 방등시(方等時) : 이후 8년 동안 -『유마경』,『사익경(思益經)』,『승만경』 등.
④ 반야시(般若時) : 이후 22년 동안 - 반야 계통의 경전들.
⑤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 : 이후 8년 동안 -『법화경』,『열반경』 (이는 부처님이 입멸 직전 하루와 한 밤 동안 설했다 한다.
그런데 천태종의 이 교판설을 법화경의 신해품(信解品)에 나오는 '가난한 아들의 비유(窮子喩)'에서 착상한 것이라고도 한다. 즉, 그 비유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전개된다. ① 부호의 아들이 유년시에 가출. ② 아들은 50년 동안 빈궁에 빠짐. ③ 아버지를 만났으나 알아보지 못함. ④ 아버지 밑에서 20년 동안 하인으로 일함. 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식임을 밝히고 재물을 넘겨 줌. 부처님의 교설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 것은 반드시 중국인의 착상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나가르주나(龍樹)의『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도 다섯 가지의 분류 방식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 밖에 중국의 화엄종에서도 나름대로의 교판을 시도하고 있는 등, 중국불교에 있어서는 자파의 입장에서 경전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으로서 교판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교판은 위의 오시설로 그치지 않고, 경전들에 대해 다시 그 가치에 비판을 가함으로써 완성된다. 즉, 부처님이 설법한 방법에 따라 분류하여 화의사교(化儀四敎)라 하고 가르친 내용을 분류하여 화법사교(化法四敎)라고 한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오시팔교가 되는 것이다(제59문 참조).
어쨌든 하나의 체계를 세워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나름대로 정리한 것은 중국인이 세운 교판의 공로이다. 그런데 이는 앞의 오시교판에서 엿볼 수 있듯이, 법화경을 중시하는 천태종이라는 자기의 입장에서 자파의 입장이 우월함을 입증하려는 의도가 담김으로써 다른 교설들이 상대적으로 열등시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실제로 중국의 교판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 아함경의 가치를 절하시켰고, 그 영향은 이후로도 계속되어 근래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중국 교판의 커다른 폐단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 아함의 교설을 가장 저급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아함경을 경시하고 그 내용에 대한 무관심을 초래케 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판을 접할 때는 이 점에 대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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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이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