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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회주의 - 불교사회주의란 어떠한 이념인가?
초기불교의 사상적 맥락 속에서 사회주의적 입장을 어느 정도 발견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초기의 성전 중에서 사회의 진화나 발전을 설명하는 몇몇 경전들은 사유재산제도의 성립을 사회악이 발생하는 시발이라고 파악하고 있으며, 불교의 상가는 그러한 사회악이 일소될 수 있는 하나의 모범적인 이상사회로서 구성된 것이라고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여기에 무아설無我說까지 끌어들여 사회적 시각으로 해석한다면, 불교는 애초에 공산적 사회를 이상으로 추구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발전 과정에서 계급차별이 사라질 때 모든 생산물은 국가 전체가 참여하는 방대한 조합에 장악되며, 공공의 힘은 그의 정치적 성격을 잃을 것이다”는 마르크스의 발언에 주목하여, 이를 불교의 평등사상과 상가라는 공동체에 대비하고서는 “이상적 형태의 정부에 관한 한, 불교와 마르크스의 체계는 유사한 입장을 취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불교와 사회주의와의 유사성을 규명하기에 앞서 위에서와 같이 마르크시즘과 불교를 곧바로 대비하는 접근방법에 있어서는 한 가지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시즘과 불교의 차이는 그 의도와 방법에 있어서 명백하다. 마르크시즘은 유물론에서 출발한 데 반하여, 불교는 아무래도 유심론적唯心論的 입장이 강하고 실제 그러한 측면이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어 왔다. 방법론에서 마르크시즘은 결과인 현상을 타파하고 개혁함으로써 원인이 제거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불교는 교의상 그 원인을 다스림으로써 결과는 저절로 개선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따라서 전자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전제주의적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으나, 후자는 각자의 해결이라는 자유방임적 방법을 허락한다. 불교의 자유방임적 입장은 개인주의와도 통하는데, 이 개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게 될 때 불교의 본의도 상실될 소지가 있음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후대의 대승불교가 이타적 보살사상을 특히 강조한 데에는 그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배려였다고도 생각된다.

어쨌든 이상과 같은 몇 가지 면만을 보더라도 불교와 사회주의와의 절충은 충분히 매력을 끌 만한 시도로 보인다. 문제는 불교사회주의라 할 때, 그 주체가 불교이냐 사회주의이냐 하는 점에 있다. 불교사회주의라는 이념이 표면적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버마를 비롯한 동남아의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이 불교를 사회체제의 이념에 끌어들이면서 부터인데,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여기서는 불교보다는 사회주의라는 체제가 우선한다. 다시 말하면 국가 존립의 방편으로서 불교가 이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불법사회주의佛法社會主義라는 말로써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불교사회주의라는 이념이 공식상 최초로 천명될 때는 불교가 사회주의를 우선하며, 불교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사회주의를 이용한다는 입장이었다.

즉, 불교사회주의는 불교의 원리에 대한 현대사회적 해석ㆍ적용ㆍ전개이며, 특히 마르크스주의를 비판적으로 흡수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한 신新인도주의를 제창함으로써 불교인간주의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불교사회주의는 전시의 일본에서 신흥불청新興佛靑의 지도자에 의해서 표방되었다. 그의 불교사회주의는 전시의 일본에서 파시즘과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저항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는 공동사회에 대한 인식과 실천에 있어서 사회과학과 불교가 완전히 동일한 것은 물론 아니다고 지적하면서, 비판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공동적 사회조직을 향해 자본주의를 개조하려는 궁극의 이상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경제문제나 제도조직의 개혁을 단순히 물질문제라고 본다면 거기에는 커다란 오류가 있으므로, 불교사회주의의 운동은 결코 물질운동이 아니라 실로 부단히 발전하는 사회의 생명을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아주의無我主義의 사회적 실천은 이러한 인식과 행동에 있어서야 그 완전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버마의 불법사회주의는 처음부터 이런 이론적 기반 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자생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유럽제국주의의 식민통치가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영국의 통치하에서 버마독립운동의 지도자들은 자연히 서구의 자본주의에 대해 혐오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또 승려를 포함한 불교인들은 영국에 대한 독립투쟁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그래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수상으로 선출된 우누(U Nu)는 전통적인 불교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의 여러 제도들을 조합함으로써 버마를 재통합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뿐만 아니라 버마는 경제발전을 위하여 사회주의적 모형을 채용함으로써 서구를 따라잡아야 했다. 수상인 우누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당면한 필요성과 불교가 담당했던 사회적 역할이 잘 일치되는 것으로 보였다.

거의 예외없이 각 지방의 다양한 인종과 집단들을 한데 통합해 준 것이 불교였으며, 또 문맹자 집단으로부터 교양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연결해 주는 것 역시 불교였기 때문이다. 비종교적인 과격파 민족주의자들, 심지어는 마르크스주의자들까지도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불교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불교의 가르침이 담고 있는 합리적인 내용은 사회주의 경제와 민주적 제도 그리고 과학까지도 수용하도록 쉽게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우누가 취하였던 이런 불법사회주의는 그 성격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그의 공식적인 발언은 수단과 목적을 수시로 바꾸었던 것이다. 즉, 불교를 목적으로 하는 수단으로서 사회주의를 옹호하는가 하면, 사회주의를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서 불교를 옹호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의 일관성이 없는 정책과 스스로 전륜성왕이 되길 원하는 듯한 집착으로 인해 그는 결국 네윈(Ne Win)의 쿠데타로 실각하고 말았다.

새로 집권한 네윈의 군사정부는 ‘버마의 사회주의화’를 표방하고 불교를 완전히 체제에 종속시켰다. 그는 이론상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기본요소를 결합했고, 그 이념을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각 개인의 의지와 욕망을 사회의 그것과 결합한 불교적 ‘중도의 실천’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주도적 역할은 사회주의적 군대가 담당하며, 불교승려들을 새로운 사회에서 실제적인 역할을 갖지 못했다. 정부는 교단을 내버려둔 채 불교교리를 사회적ㆍ정치적ㆍ경제적 변화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버마의 불법사회주의는 불교가 국가 존립의 도구로서 정착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불교가 순수하게 이런 역할만을 할 수 있었다면, 국가주의 사회에서 이는 크게 탓할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국가란 실제의 전개된 상황으로 보면 독재체제를 가리키게 된다는 점에 버마 불교사회주의의 문제가 있다. 사회주의의 이념에 불교를 종속시키는 불교사회주의는 이후 라오스와 오늘날의 캄푸치아에서 더욱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 1976년 라오스의 부수상은 승려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승려들의 정치연구는 진보적 혁명정부에 맞도록 통합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전제하고서, “우리는 혁명적 정치학과 부처님께서 실천하신 정치학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오직 그 조직과 실행만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승려들은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부처님의 정치적 간부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정치적 의무를 보다 깊이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근래에 캄푸치아의 한 승려는 정치와 불교의 공존에 대해서 “양쪽 모두 사람들의 행복을 구하는 데서는 동일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현정부는 승려의 존재방식에 대해 승려가 사회를 위해 크게 활동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버마는 제외하더라도 여기서 보이는 라오스와 캄푸치아의 상황이 현재 표면화된 불교사회주의의 실상일 것이다.

이상과 같이 동남아에서 사회주의가 불교를 등에 업고 대두하게 된 데에는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국 이외의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지배하였던 서구의 식민지정치는 곧 자본주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항한 민족주의운동은 대개 불교도가 주도했는데, 이는 서구적 가치에 대한 전통적 가치의 수호와도 연계된다. 그런데 불교로부터 자본주의의 정신을 끌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회학자의 시각이다. 더욱이 독립 이후엔 전통적 가치와 이미 확산된 서구적 가치와의 조정작업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적ㆍ문화적 상황을 타개할 중도中道로서 불교사회주의의 표방은 지극히 당연히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세계정세나 자국의 국가정세가 중도를 표방했던 애초의 불교사회주의를 국가사회주의적 성격으로 변질시켰을 것이다.

불교사회주의의 본래 이념은 불교라는 종교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중도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니면 불교를 우선한다는 게 불교도의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정치가 국가를 이끌기 마련이므로 그 본래의 이념은 변질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변질된다 하더라도 불교가 특수한 지엽적 목적에 이용되지 않고 민중 전체를 위해 공헌하는 역할을 한다면, 불교사회주의는 중생구제라는 실천적 측면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일본 신흥불청의 불교사회주의의 기본입장을 고려하면서 불교사회주의라는 이념에 접근하는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의 동남아 불교사회주의에 대한 냉철한 비판도 아울러 요구된다. 어떤 의미에서 불교사회주의는 하나의 이상으로서 끊임없이 추구되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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