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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접촉하는 순간
"여섯 가지 악마의 갈고리가 있다.
어떤 것이 여섯인가.

눈으로 색에 맛들여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악마의 갈고리다.
귀로 소리에 맛들여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악마의 갈고리다.
코로 냄새에 맛들여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악마의 갈고리다.
혀로 맛에 맛들여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악마의 갈고리다.
몸으로 감촉에 맛들여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악마의 갈고리다.
뜻으로 법에 맛들여 집착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악마의 갈고리다.

만일 수행자로써 육근으로써
육경에 맛들여 집착하게 되면
마땅히 알라,
이러한 수행자는
악마의 갈고리가 목에 걸려
악마에게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잡아함경]


눈으로 모양과 빛깔이라는
보이는 대상에 맛들이고 집착하는 것이
악마의 갈고리가 목에 걸리는 것이란 말이다.

좋아 보이는 것이나, 아름다운 것이나,
사랑스러운 것이거나, 갖고 싶은 것이나,
그러한 눈에 보이는 대상에 맛들여 집착하게 되는 것은
곧 악마의 갈고리가 목에 걸리는 것과 같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리 아름다울 지라도,
귀에 들리는 소리가 아무리 듣기 좋을 지라도,
코에 닿는 냄새와 혀에 닿는 맛과 몸에 닿는 촉감과
뜻에 닿는 법이 아무리 좋게 느껴질지라도
거기에 맛들여 집착하게 되면
곧 악마의 꼬임에 빠지는 것이 되고 만다.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대상에 대해
좋거나 싫다는 두 가지 극단의 생각을 버리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맛들이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악마에게 걸려들지 않고
정법의 진리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뛰어난 길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어떤 종류의 수행자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여야 하는가' 묻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만일 그가 눈으로 색을 보아도 탐내지 않고
욕심을 떠나며, 애착하지 않고, 갈구하지 않으며,
생각을 떠나서, 내면이 고요하고,
법답지 않은 행을 하지 않으며,
평등한 행을 실천하고,
어설프고 까탈스러운 행을 행하지 않으면
그러한 수행자는 마땅히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여야 할 것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다." [잡아함경]


눈으로 좋은 대상을 보더라도
탐내거나 애착하거나 갈구하지 않고
생각을 떠나 내면이 고요하여
법답지 못한 행을 하지 않으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대상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행한다면
이러한 수행자를 마땅히 공경하고 존중하며
섬기고 공양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처럼 수행자가 해야 할 중요한 수행은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그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물들지 않는 것으로,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잘 닦고 관하는 것이다.

즉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그 대상에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갈구하지 않아 고요해지려면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그 대상을 접촉할 때
늘 놓치지 말고 관찰함으로써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관찰하라고 이르고 계신다.

"마땅히 눈은 덧없는 것이라고 바르게 관찰하라.
이와 같이 관찰하면 그것을 바른 관찰이라 한다.
바르게 관찰하기 때문에
애착하지 않는 마음이 생기고,
애착 없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기쁨과 탐욕을 떠나며,
기쁨과 탐욕을 떠나기 때문에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대해서도
기쁨과 탐욕을 떠나면 마음이 바르게 해탈한다."

"이와 같이 마땅히 눈은 괴로운(苦) 것이라고 바르게 관찰하라... (중략)
마땅히 눈은 공(空)한 것이라고 바르게 관찰하라... (중략)
마땅히 눈은 나가 아니라고(無我) 바르게 관찰하라... (중략)"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을 접촉하여 대할 때
바르게 관찰하면
덧없으며(무상), 고이며(고), 공하며(공), 내가 아님(무아)을
바로 관찰하게 되는 것이며,
그랬을 때 집착을 떠나 바른 해탈이 있는 것이다.

눈이 어떤 대상을 볼 때
눈(육근)과 대상(육경)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보고 있는 눈도 무상, 고, 공, 무아이며,
보여지는 대상 또한 무상, 고, 공, 무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보는 기능을 가진 눈이라는 우리 몸의 기관은
항상하지 않고, 그렇기에 괴로운 것이며,
잠시 인연따라 보는 기능을 가졌을 뿐
본래는 텅 빈 공한 것이다.
그렇기에 눈이라는 기관은 실체가 없는 것이고
결국 '눈이 나다'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여지는 대상 또한 마찬가지다.
보여지는 대상은 눈에 보이는 일체의 모든 것을 말하는데,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항상하지 않는다.
항상하지 않기에 언젠가 소멸하는 괴로운 것이며,
고정된 실체가 있지 않고 인연따라 만들어진 것이기에 공하고,
결국 자체의 실체라는 것을 가지지 않았기에
무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눈도 대상도 모두
무상, 고, 공, 무아인 것이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사유해 보면
저절로 그러한 깨달음이 열리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의 감각기관은 육근,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그 대상인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을 만날 때
아무 생각 없이 만나게 하고,
아무 관찰 없이 만나게 함으로써
그 대상을 맛들이고, 집착하게 하고,
애착하여 갈구하는 일이 없도록
'접촉'하는 순간을 잘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비구들이여,
선에 들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마을로 들어 갈 때나, 밥을 걸식 할 때나,
혹은 마을에서 나올 때나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지금 눈으로 색을 보고 있다.
혹시 보면서 욕심이나 애착이나 집착을 일으키지는 않는가'라고.

사리불이여,
비구가 이렇게 관찰할 때에
만일 눈이 색에 대해 식별할 때,
좋아하는 생각과 물들어 집착함이 있으면,
그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음을 끊기 위하여,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생각을 잡아매는 공부를 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불이 머리나 옷을 태울 때
그것을 끄기 위해 온갖 방편으로 힘써 그것을 끄는 것 같이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마땅히 더 부지런히 노력하여,
생각을 잡아매는 공부를 하여야 한다.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혹은 길에서나 마을에서나,
밥을 빌 때나 마을에서 나오는 중에도,
눈이 색에 대해 식별할 때
좋아하는 생각과 물들어 집착함이 없으면
그 비구는 기쁘고 즐거운 알아차림으로
밤낮으로 꾸준히 힘써 생각을 잡아매기를 닦고 익혀야 하나니,
비구여 이것을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닦아 익히라." [잡아함경]


이처럼 눈으로 무언가를 볼 때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언제나
'눈으로 대상을 보면서
무언가 집착이나 애욕이 없는가'를
늘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관찰하고 비추어 볼 때
집착이 사라지고
집착이 사라지면 곧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눈의 식별과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식별을 바로 관찰하고,
바로 관찰할 때에는
도무지 취할 만한 것이 없다.
취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으므로 스스로 '열반'을 깨닫는다." [잡아함경]




- 출처 : 달마넷 법상스님 불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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