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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두를 잊어버리면 왜 안 됩니까?
■ 혜봉 : 화두는 보석을 캐는 도구와 같아서 금을 캐는 사람이 도구를 잊어버리면 금을 캐고 싶어도 금을 캘 수 없듯이 화두를 잊어버리면 참다운 자기를 알 수 없습니다.
▶ 저는 화두 참구하다가 답이 빨리 안 나오면 하기 싫어서 그만두게 됩니다.
■ 혜봉 : 왜 답이 빨리 나오기를 바라죠.
▶ 빨리 깨달아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잖아요.
■ 혜봉 : 빨리 깨닫고 싶고 답을 빨리 알고 싶다고 해서 빨리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곡식도 심어서 때가 되어 꽃 피고 열매 맺어 알곡이 여물어야 추수를 하듯이 화두 참구 역시 부지런히 참구하여 스스로 익어야 깨닫게 됩니다. 익지도 않은 땡감을 따게 되면 감은 감이지만 온전한 감이 아니듯이 설사 깨달았다 해도 온전히 깨달은 것이 아닐 때에는 깨달은 것이 완전히 자기 것이 못 됩니다. 특히 화두를 참구하여 시험 볼 때 답을 맞추듯이 한다면 남이 만들어 놓은 모범답안을 외워서 맞추는 것과 같아서 자신이 깨닫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 그러면 어떻게 참구해야 하는지요.
■ 혜봉 : 답을 알려고 하거나 빨리 깨닫고자 하는 마음부터 버리세요. 그리고 오직 화두만 남을 때까지 참구하세요. 즉, 화두가 사무쳐서 앉아 있을 때에도 분명하고, 걸을 때에도 분명하고, 밥 먹을 때에도 분명하여 오직 화두 일념이 될 때까지 참구하고 나아가세요. 그리하여 때가 되면 일체를 요달하고 모든 것을 사무쳐 밝게 아는 '참자기'를 깨닫게 됩니다
▶ 선생님, 초기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라 하고, 대승불교에서는 '실체가 없다'거나 '비어있다(空)'고 하는데 '내가 없다'는 것과 '실체가 없다'는 것이 어떻게 같은지 이해가 안 됩니다.
■ 혜봉 : (종을 들어 보이면서) 이 종은 '내가 있다' 합니까?
▶ 아니요.
■ 혜봉 : '내가 없다' 합니까?
▶ 아니요.
■ 혜봉 : '실체가 있다' 합니까?
▶ 아니요.
■ 혜봉 : '실체가 없다' 합니까?
▶ 아니요.
■ 혜봉 : 그러면 이 종의 진면목은 뭐죠?
▶ 그냥 종입니다.
■ 혜봉 : 진면목을 물었지, 이름을 물은 것이 아닙니다.
▶ 그냥 그것입니다.
■ 혜봉 : 아직도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군요. (종을 다시 들어 '띵' 하고 친다) 참으로 이 놈의 진면목을 개념이나 이름이 아닌 것으로 바로 일러 보세요.
▶ 개념이나 이름 아닌 것으로 어떻게 이르라 하십니까?
■ 혜봉 : 그대는 개념이나 이름에 묶여 있군요. 개념이나 이름으로 일러야 한다는 생각마저 버리세요.
▶ 불교 경전들을 보면 대부분 '이 경전이 최고다' 하는 말씀들이 있는데 어떤 경전이 최고의 경전입니까?
■ 혜봉 : 최고의 경전은 본래 없습니다.
▶ 금강경을 보면 금강경이 최고라 하고, 법화경은 법화경이 최고라 하고, 열반경은 열반경이 최고라 합니다.
■ 혜봉 : 금강경은 금강경이 최고이고, 법화경은 법화경이 최고이고, 열반경은 열반경이 최고입니다.
▶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 혜봉 : '최고다, 최고가 아니다' 하는 말에 끌려가지 마세요. 말이나 문자는 방편이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며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입니다. 이를테면 강릉에 갈 때는 강릉행 기차가 최고이고, 부산에 갈 때는 부산행 기차가 최고입니다. 경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을 일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 그런데 부산 갈 때에 기차도 있지만 비행기도 있고 자동차도 있지 않습니까?
■ 혜봉 : 물론 그렇지요. 말하자면 앞에 말씀드린 것은 목적지가 같은가 다른가에 따라서, 같은 차라 해도 그 차가 어디로 가는가에 따라서 차를 선택하는 것이 달라지며, 목적지가 다같이 동일하다 해도 가는 과정에 대한 각자의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서 그 의미와 가치도 또한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빨리 가고 싶은 사람은 비행기가 최고이고, 그냥 가기만 하면 버스든 기차든 상관 없이 하이킹이 목적인 사람은 자전거를 탈 것이며, 걷는 것에 뜻을 둔 사람은 걸을 것입니다.
▶ 그러면 최고의 경전은 본래 없다 해놓고 금강경은 금강경이 최고요, 법화경은 법화경이 최고이고, 열반경은 열반경이 최고라 하십니까?
■ 혜봉 : 그러면 최고가 아닌 경전을 말해보세요.
▶ 최고가 아닌 경전은 없습니다. (대중들 웃음)
■ 혜봉 : 그렇습니다. 본래 경에는 최고다, 최고가 아니다 하는 것은 없습니다. 문자나 말에 속지 말고 묶이지 마세요. 마음을 만들어 따지지 마시고, 분별하지 마세요. 정말 명심해야 하는 것은 마음으로 생각을 지어 따지고 분별하고 취사선택하는 마음과 이런 마음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면서 마음에 담아 두었던 과거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서, 본래부터 일체의 시비분별이 없는 맑은 마음, 밝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모든 경전이 가르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청정하고도 지혜로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방법들을 일러주는 지도이고 나침반입니다.
▶ 관세음보살님은 '실제 인물이다, 가공인물이다'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혜봉 : 당신은 사람입니까, 사람이 아닙니까?
▶ '사람이다, 사람이 아니다' 하는 것은 다 생각이고 마음입니다.
■ 혜봉 : 사람들이 관세음보살은 '실제 인물이다, 실제인물이 아니다' 하는데 그러면 누구의 말이 옳은가요?
▶ (누군가 대답한다) 관세음보살은 실제 인물입니다.
■ 혜봉 : (그를 향해서) 관세음보살을 본 적이 있습니까?
▶ 본 적은 없습니다.
■ 혜봉 :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실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 어느 책을 보니까 관세음보살 일대기가 있었습니다.
■ 혜봉 : 책에 있으면 실제 있는 것입니까?
▶ 책에서 사실이라고 하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지요.
■ 혜봉 : 그런 생각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 제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 혜봉 : 그러면 마음이라는 것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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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