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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 혜봉 : 모르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허물 때문에 상대가 미운 마음을 일으켰다면 이것은 모르고 지은 허물이라서 그 과보 또한 오래 가고 고치기 어려운 죄업이 되지요. 그러나 오해 때문에 생겼다면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상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자신에게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일 뿐입니다. 물론 상대의 마음을 알 때 안으로 돌이켜서 자신의 허물을 소멸시킬 수 있다면 이 또한 죄업을 소멸하여 해탈로 가는 길이지만 상대의 마음을 보고 오히려 마음을 일으킨다면 자신의 업을 확대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따라서 마음공부의 차원에서 보면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가 없으며 오직 자신의 허물이 문제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남의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마음은 그 마음 자체가 망령된 것이라서 망령된 타인의 마음을 안다 해서 자신이 해탈할 수 있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남의 마음을 잘 읽는 능력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공부가 많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거니와 이것 때문에 오만해져서 타인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고자 하는 망상에 빠져서 타인을 끊임없이 단죄하고 심판하게 되는 죄업을 짓게 될 수도 있습니다. 즉 무당과 같은 짓을 하게 될 수도 있지요.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지요?
■ 혜봉 : 안 보려고 하는 것도 마음을 짓는 것이니 보려고도 하지 말고, 안 보려고도 하지 마세요. 이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을 보고 공부하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자신에게 이런저런 망령된 마음이 일어나면 그냥 가만히 바라보면서 일어나면 일어나는 줄 알아차리고, 있으면 있는 줄 알아차리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줄 알아차리되 집착하고 붙들고 있는 것이 있거나 과거 기억 때문인 줄 알면 그냥 다 버리듯이 타인의 마음에 일어나는 망령된 마음도 역시 내 마음, 네 마음 나눌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알아차리고 놓아버려야 하듯이 모든 것을 그냥 하나의 망령된 마음인 줄 알고 그냥 바라보고 알아차리고 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해야 할 바가 있다면 마음을 일으킨 사람으로 하여금 그 스스로가 자신의 업과 마음을 알아차려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지, 안다고 해서 무조건 말하거나 지적하거나 알려 주는 것이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살펴보려고 하지 않고 점쟁이한테 묻듯이, 물어서 해결하려는 의타심만 길러줘서 노예와 같은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한 두려워서 피하게 만들기도 하고 상대는 다 아니까 알아서 해결해 주리라는 생각을 해서 스스로의 지혜를 덮게 만들기도 합니다.
▶ 미래를 미리 알아서 불행을 방지하는 일이 왜 나쁜 일입니까?
■ 혜봉 : 나쁜 일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경계하라 했습니다.
▶ 경계하라는 말씀은 나쁘니까 경계하라는 말씀이 아닌지요.
■ 혜봉 : 미래를 미리 아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미래를 잘 예측하고 안다 함은, 자동차 정비공이 자동차를 오랫동안 다루다 보면 자동차의 수명을 예측하고 자동차 소리만 들어보고 그 자동차의 고장 유무를 알아내는 능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즉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은 하나의 능력이지 이것이 도의 척도가 된다거나 진리(法)를 깨달았다거나 생사 이전의 참된 자기를 깨달은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미래의 불행을 알아서 미리 방지한다 해도 생사해탈의 이치를 모르고 죽으면 그대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은 곧 마음이 만든 망령된 허깨비인데도 이것을 진짜라 생각하고 행복이다, 불행이다 하는 것입니다.
경상북도 문경에 실제로 있었던 일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농사 짓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농사 짓는 밭에 농사 짓기 불편하게 하는 아주 큰 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고민이 되었는데 어느 날 근처에서 일하던 포크레인 기사를 보고 밭에 있는 돌을 치워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이 돌만 없으면 앓던 이가 빠지듯이 속이 시원할텐데' 하고 돌 때문에 늘 신경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부탁을 들은 포크레인 기사는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치워주기로 하고 포크레인으로 돌을 치우는데 기사가 돌을 치우면서 이 돌을 자기 집에 가져가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 농부는 그 돌을 치우는 것이 기분 좋아서 그 돌이야 기사가 가져가든 말든 상관이 없어서 가져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일은 얼마 후에 밭에 있던 돌을 치워버리고 기분 좋아하던 농부에게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 돌을 집으로 가져간 포크레인 기사의 집에 수석전문가가 와서 그 돌을 500만원에 팔라고 제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포크레인 기사는 거절을 했고 수석전문가는 값을 계속해서 올려 부르다가 얼마 후에는 2천만원, 3천만원하고 부르다가 5천만원에 사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입니까? (참고로 문경은 우리나라에서 수석이 많이 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음.) 그래서 그 농부는 자기 밭에 있던 돌이 '그냥 돌이 아니라 값나가는 돌이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버리다니 이렇게 한스러울 수가 있는가' 하면서 가슴을 쳤지요. 그 돌만 생각하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그만두고 자신도 본격적으로 수석 수집에 나섰습니다. 집에는 돌무더기가 쌓이기 시작하고 남들이 좋은 수석이라는 평이 있으면 돈을 주면서까지 돌을 모았습니다. 땅까지 팔아서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모아놓은 수석들을 누군가 돈을 주고 사가야 돈이 되는데 아무도 사가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집에는 애물단지 같은 돌만 잔뜩 쌓여 있을 뿐 농사짓고 싶은 마음도 나지 않고 농사지을 땅도 얼마 남지 않고 급기야는 병들어 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ㆍ불행이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돌을 문제삼을지 모르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 농부의 무지와 울화와 탐욕이 빚은 결과이지요. 따라서 미래라는 것도 그 사람의 마음이 만드는 것이며, 그 마음이 본래 그림자라서 미래를 안다는 것도 알고 보면 마음의 그림자를 아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이 끊어져서 집착이 없다면 행ㆍ불행이랄 게 없습니다.
▶ 이를테면 자동차 사고를 미리 알아서 죽거나 다치는 일을 피해 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까?
■ 혜봉 : 세상 사람들은 당연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자동차가 망가져서 돈이 들어가기보다는 돈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오랫동안 사용하게 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이 다치기보다는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이 일찍 죽기보다는 오래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한 면만을 보는 관점이라서 행복할 수도 있을 일을 불행하다 못박아버리고 행복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몸을 다치지 않는 것은 행복하고, 몸을 다치는 것은 불행하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몸을 다쳐서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어서 장애인이 된 사람은 행복하지도 않고, 행복해질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몸 건강한 사람은 다 행복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는 경우가 너무도 많고, 장애인은 불행해야 되는데 장애인 가운데는 인생을 행복하게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도 대단히 많습니다.
따라서 몸이 건강하고 건강하지 않고, 몸에 병이 있고 없는 상황에 따라 행ㆍ불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육신을 자기로 삼고 육신에 집착한 결과이며 죽음 때문에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는 생각은 생사(生死) 문제를 모르는 무지 때문에 생긴 문제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사를 넘어선 참자기를 참으로 아는 사람은 육신이 다치거나 병이 들거나 때가 되어 죽는다 해도 문제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바람이 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일이나 칼이 목을 지나가서 목이 잘리는 일이나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일제 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경허 스님의 제자였던 수월 스님의 이야기입니다. 스님께서는 만년에 만주에서 짚신을 삼고 주먹밥을 만들어서 만주에서 굶주리는 동포들과 독립군을 도우면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적들이 쳐들어와서 붉게 달군 인두로 고문을 하면서 돈을 요구했는데, 인두로 아무리 몸을 지져도 솔바람 스쳐 지나갈 때와 같이 너무도 태연하니까 마적들이 오히려 혼비백산하고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왜 신통을 경계해야 하는지요?
■ 혜봉 : 신통을 경계하라 함은 신통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니라 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신통에 집착을 하게 되면, 집착을 하게 되는 신통 자체가 마구니가 되는 것입니다. 생사뿐만 아니라 일체로부터 해탈하여 본래면목을 깨달아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 고해의 바다를 건너게 하는 것이 수행하는 사람들의 본분사인데, 공부하다가 생긴 작은 재주를 믿고 이것을 좋아하거나 이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세상 사람들도 눈멀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도 눈이 멀게 되어, 참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져서 다시 생사윤회 하는 마귀의 굴로 뛰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화두 참구하는 공부와는 멀어져서 대도(大道)를 등지게 됩니다.
▶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이 생기더라도 다 놓아버리고 오직 참구로 나아가라는 말씀인가요?
■ 혜봉 : 바로 그렇습니다. 오직 사무치게 참구하여 생사관문을 뚫고 본래 얻을 바 없고(無所得), 태어남이 없는, 본래부터 해탈되어 있는 영원한 진리(無生法忍)를 깨달아야 합니다.
▶ 저는 화두 참구를 하는데 제 몸도, 마음도 온 천지가 의심으로 가득 차서 잠도 오지 않고, 일도 할 수 없고, 차를 타고 가다가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종점에 내려서 돌아오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요.
■ 혜봉 : 그럴 경우는 화두 자체가 모든 번뇌망상을 다 소멸시키고 일체 생각을 끊어지게 하여 일체가 다 사라지고 의심덩어리 하나만 남은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오직 화두 참구에 몰두하시기 바랍니다. 즉, '본래면목이 이것이구나. 생사와 상관없는 자리가 이 자리구나. 생사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이 이것이구나' 하고 깨달을 때까지 정진에 몰두하세요.
▶저는 조사어록을 보면 그것이 무슨 도리인지 다 알겠는데 번뇌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화두를 타파할 때는 통 밑이 쑥 빠지듯이 몸과 마음에 있던 온갖 업이 무너진다고 했는데 저는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이 공부가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 혜봉 : 번뇌가 끊어지지 않은 것은 화두를 참구해서 조사스님들께서 깨달은 바를 깨달아 알았다 해도 참으로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러한 경우는 머리가 좋아서 머리로 안 것이지 참으로 의심이 사무쳐서 온갖 업장이 녹으면서 증득하여 깨친 바가 아니라서 그러합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경우는 완전히 깨쳐서 증득할 때까지 자기를 부지런히 버리고 버려서 아상이 없어질 때까지 정진해 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경계할 일은 화두 참구한다고 해서 통 밑 빠지는 듯한 체험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몸이 무너지는 듯하고, 밑이 빠지는 듯하고, 풍선 터지듯 하고, 온 몸에 열이 나는 것은 그 사람의 업에 따라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날 뿐입니다. 본래부터 쌓아 놓은 업이 없거나 번뇌망상이 별로 없이 평소에 마음이 쉬어져 있는 사람은 특별한 느낌이 없이 그냥 '아하, 그렇구나' 하고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번뇌가 끊어지지 않거나 의심이 일어나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 함이요, 자신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상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자신의 아상을 쳐부수어 없애고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히 살펴서 추호도 남김없이 마음이 일어나게 만드는 마음의 뿌리를 잘라내야 합니다. 마음의 뿌리를 잘라내지 않으면 화두 관문을 통과해도 완전히 통과하지 못합니다.
▶ 저는 화두를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면서 화두가 성성합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는 화나는 일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습니다.
■ 혜봉 : 화두를 잡고 앉아 있을 때는 화두가 여일하고 번뇌가 없어서 성성적적(星星寂寂)하지만 일상 가운데에서는 화가 여전하다면 그것은 참으로 성성적적한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일체 번뇌가 끊어지면 앉아 있으나, 일을 하나, 밥을 먹으나, 화장실에 가나,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거나 욕을 들어도 상관없이 일체 시비가 일어나지 않으며, 오직 화두만 성성하게 됩니다. 오고 가고, 일을 하고 하지 않고, 사람이 죽고 살고에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화두에 사무치게 된다 이 말입니다.
▶ 저는 화두를 참구하는데 진전이 없어 어떤 생각에 묶여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 혜봉 : 제가 묻는 대로 일러보세요. (손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이 소리가 어디서 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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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