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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에게,
편지 보내주어서 고맙다. 어떻게 지내니? 네 편지를 읽는 동안 아주 재미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과학을 공부했는데 나 역시 그 당시에 의문이 많았다. 이 우주가 어떻게 115가지의 원소로 생성되었을까 하고 생각했었지. 그 115가지의 원소는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그것이 너무 궁금해서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더니 그것들은 무극(無極)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셨다. 무극이란 끝이 없어 텅 빈 상태란다. 그 대답을 들은 후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원소들이 진정 비어있는 공간에서 비롯되었다면 어떻게 눈에 보이게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선생님께서는 예를 들어 주셨다. 햇빛은 아무색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물방울과 접촉하여 무지개를 만든다고 말이다. 만일 100명의 사람들이 이 무지개를 보았다면 100개의 무지개가 있는 것이요,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무지개는 없는 것이다. 네가 무지개를 보고 있다면 네 눈앞에 무지개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말씀을 이해하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갖가지 색이 배열되어 있는 회전판이 달린 기계를 교실로 가지고 오셨다. 그 원판을 돌리자 아무 색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회전판이 멈추고 나면 많은 색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만물도 이와 같다. 모든 것이 공(空)에서 생겨나서 공으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초보 수준의 과학자들이 그저 "1+2=3"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때, 중간 수준의 과학자들은 "1+2=0"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게 아닐까? 다른 말로 말하자면 후자의 과학자들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은 "1,2,3과 0은 누가 만드는가? 누가 색과 공을 만드는가?"하는 질문을 한다. 수(數)와 개념, 색과 공은 둘 다 개념이다. 개념은 바로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네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생각이 있기 전엔 너도, 나도, 색도, 공도 없다. 생각이 있기 전에는 모든 것이 진공(眞空)속에서 있는 그대로 있을 따름이다. 색은 색이요, 공은 공이다.
우리는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마치 컴퓨터와 같다. 컴퓨터는 혼자서 움직이지 못하며 "그 무엇인가"가 우리의 인식을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과학이라는 학문의 체계를 세웠다. 그러니 그 무엇인가가 우리의 인식을 조종하고 따라서 과학도 조종한 것이다. 그 무엇인가는 과학도 아니요, 인식도 아니지만 인식과 과학의 주인인 셈이지. 너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겠다. 바로 앞에서 말한 "그 무엇인가"를 터득한다면 인식과 과학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무엇인가"가 바로 선이다. 이제 되묻겠다. "그 무엇"이란 무엇인가? 그럼 다른 질문을 해보마. "1+2=3" 과 "1+2=0"중에 어떤 것이 맞는가? 어쩌면 이 질문을 너무나 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너는 하나는 알면서 둘은 모르는구나."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만일 네가 앞의 질문을 이해할 수 있다면 높은 수준의 과학자요, 참선 수행자이며 그 두 가지 식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 "오직 모를 뿐"이란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거라. 많은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가도 확인하지 마라. 억지로 인식하려고도 하지도 마라. 과학에도 신경쓰지 마라.
네가 어떤 것도 억지로 하지 않고 올바른 인식과 올바른 과학을 터득하여,
하루 속히 생사윤회를 뛰어 넘고 중생을 번뇌에서 제도하기 바란다.
숭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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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