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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에 아끼던 동생을 잃었다. 지금 생각해도 여운이 조금 남지만 그 시절 나는 유난히 감성적이었던 것 같다. 그때 그리운 할머님과 동생 생각이 나서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할머님, 지금 이렇게 앉아 있습니다. 비도 오고 진달래 꽃도 핀 산사(山寺)입니다. 그 예전에 하지도 않은 떡을 큰 댁에서 한다고 해서 떡 갖고 오기만을 한 나절이나 기다리게 한, 동생은 지금은 가고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텅 빈 세상입니다. 할머님, 시간(時間)이라는 것은 참 묘(妙)한 것인가 봅니다. 어떻게 그렇게 고향(故鄕)도 떠나고, 하나 남은 동생도 저 세상에로 가고 이젠 또 어떻게, 시간의 지층(地層)을 거슬러 올라와 할머님과 이런 말씀을 나누니. 할머님 인간의 가슴은 크나큰 별 것이 그득한 창고와도 같은 건가 봅니다. 눈물이 있어도 기쁨이 있어도 그저 간직해 두었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하는 저는 회색, 진회색 옷을 두른 승려이옵니다. 그리고 할머님의 귀여운 손자이옵니다. 1973년 3월 23일”
진묵(震默一玉, 1562∼1633)스님은 모친 제문(祭文)에서 운수납자를 ‘표주박 하나 차고 다니는 행걸일승(行乞一僧)’이라 했다. 다음은 진묵스님의 모친 제문이다. “태중 10달 동안의 은혜를 어떻게 갚으며, 슬하에서 3년 동안 길러주심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만 세를 사시고 또다시 만 세를 사셔도 자식의 마음은 오히려 싫거늘, 백 세도 못 채우셨으니 어머님의 수명이 어찌 이다지도 짧습니까. 표주박 하나로 떠돌아다니며 탁발하는 객승은 이미 그러려니와, 비녀 꽂은 규중의 시집 안 간 누이동생은 애처롭지 않습니까. 상단의 불공 마치고 하단의 시식도 끝나니 중들은 각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앞산은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데, 혼은 어디로 갔습니까. 오호 애닯도다!(胎中十月之恩 何以報也 膝下三年之養 未能忘矣…上壇了下壇罷 僧尋各房 前山疊後山重 魂歸何處 嗚呼哀哉)”
진묵스님은 제문의 한 구절인 “앞산과 뒷산은 첩첩한데 혼은 어디로 갔는가. 오호 애닯도다!”에서 부모의 은공을 다 갚고 있다. 당시 생불(生佛)이라 칭송받던 큰스님인데 누구보다 장한 효자였다. 또 한 분의 큰스님 이야기를 해보자.〈다신전(茶神傳)〉의 저자 초의선사(艸衣禪師, 1786~1866)도 그의 귀향시(歸鄕詩)에서, “멀리 고향 떠나 어언 40년 / 돌아와서야 머리에 흰 눈 쌓인 줄 알았네. / 마을은 풀에 묻혀 집 있던 곳 사라지고 / 옛 무덤엔 이끼 덮여 밟은 자취 서글퍼라. / 마음이 죽으니 한숨도 잦아들고 / 피마저 말라서 눈물도 흐르지 않네. / 외로운 지팡이 다시 구름을 따르고자 하니 / 아서라! 고향에 뼈를 묻는 여우보기 부끄럽네(遠別鄕關四十秋 歸來不覺雪盈頭 新基草沒家安在 古墓苔荒履跡愁 心死恨從何處起 血乾淚亦不能流 孤杖更欲隨雲去 已矣人生愧首邱)”
이런 지극한 효심, 그리고 한숨도 눈물도 다 태우고 비운 자리는 곧 불심과 하나이리라. 수행자라 하여 효를 잊은 채 주장자 하나 들고 다시 발길 돌리니, 태어난 굴을 향해 머리를 돌리고 죽어가는 여우보다도 못하다는 탄식이 나올 법한 일이다. 이제 해제가 가까웠다. 산중에서는 해제를 기해 백중천도재를 더욱 정성껏 모셔야 하리라.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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