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유난히 더운 날이 계속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1960년대 어려운 시절 산중에서는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해소해 드리려 한다. 그 시절 한 여름 폭염이 계속되면 바닷가 시원하게 끝없이 부는 바람을 생각하며 방선 시간을 보내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일기 한 켠을 보자.
“무한히 즐거운 해변 / 해심(海心)을 좇으며 / 정진(精進)의 법열(法悅)을 느끼며 / 짭짤한 바닷바람을 쐬며 / 바다, 난 너에게서 / 숱한 에뜨랑제를 배우고 강요당해 왔다. / 언제이고 돌아올 탕아(蕩兒)처럼 와보는 해변은 / 조금은 포근한 엄마의 체취가 서려있다. / 조금은 실향병(失鄕病)을 나누어 가지잔다 …. (1969. 음 2월)
한참 정진에 몰두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망상 속을 헤맬 때가 있다. 그래서 내 상좌 중의 어떤 녀석은 해제철에 보았던 영화장면이 죽비소리가 날 때까지 장면 장면이 이어지더라는 말에 혼내 준 적이 있지만, 사실 초학자 시절엔 흔히 있는 일이다. 이제 해제가 한 달 남짓 남았으니까 자칫 느슨해 질 수 있는 정진자세를 바짝 조여야 하겠다. 또 정진 중에 조는 장면도 가지각색인데 평소에 다리와 허리가 튼튼한 이는 제법 피곤할 때도 바른 자세를 잘 유지하지만, 힘이 떨어지기 시작한 노장님들은 피곤이 겹치거나 날씨가 궂은 날은 어김없이 상하 좌우로 흔들어댄다. 어떨 때는 갑자기 뻥하고 뒤로 넘어지는 일도 간혹 생긴다. 그럴 때면 옆이나 뒤에서 졸던 다른 수좌들이 덕분에 깜짝 놀라 깨는 일도 있다. 어쨌든 졸리운 여름철 정진은 예나 지금이나 힘든 일인 게 틀림없다. 다음은 1970년대 내가 한참 운수(雲水)로 다닐 적에 썼던 어느 우바이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젠 여름이구나. / 여름에 오랑캐 꽃 참 조금 있으면 / 해바라기 계절, 그렇게 그렇게 졸리운 노오란 꽃술을 / 펑퍼짐한 대지의 둔부에 언덕바지에 흩으며 / 가을은 그런 해바라기의 서툰 미소와 / 따가운 매미소리와 고추잠자리와 / 잊어버린 어린 시절과 … / 또 경건히 경(經)을, 보살님의 미소를 읽고 / 청초한 멋을 흩으며 난(蘭)은 사는 거겠지. / 아니 마음껏 관념의 세계를 창조하는 동안 / 삶은 그 의지(意志)의 일부분이자 전부겠지. 안녕을 옛 동산 (1976년 가을 오대산 북대에서)”
그러나 공부가 좀 익은 구참들은 졸면서도 화두는 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태가 좀더 지속되면 밥 먹을 때나 대소변 볼 때에도 정진은 이어져서 화두가 항상 힘 안들이고도 들리는 삼매의 경지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마당을 쓸어도 쓰는 것이 아니요, 끄떡끄떡 졸더라도 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고봉화상(高峯原妙, 1238~1295)처럼 도반과 행각 중에 옆에서 자던 객스님의 목침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에 깨달음의 소식이 오는 경우, 운문(雲門文偃, 864~949) 선사처럼 법을 물으러 가서 게속 반복되는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다 발이 문틈에 끼이면서 오도(悟道)한 경우, 향엄(香嚴智閑, ~898) 선사처럼 마당 쓸다가 돌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는 경우 등이 이런 사례이다.
실참(實參)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
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