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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봉노사를 시봉하면서, 한암스님을 비롯한 많은 노사께서 선지식들과 주고받은 서간문을 대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본인도 편지글을 자주 쓰게 되었고, 그래서 도반과의 편지도 내 일기에는 여러 번 눈에 띈다. 요즘이야 생각이 풍부해지고 도반 그리는 정을 전할 수단들이 너무나 많지만,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편지는 가장 손쉬운 통신수단이었다. 그래서 선지식들은 법문답마저 서간문으로 주고 받은 것이 아닐까? 하기야 요즘이라 하더라도 핸드폰으로 또는 문자메시지로 선문답을 주고받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에는 경봉노사가 당대의 선지식 한암선사에게 편지글로 자신의 공부경계를 확인한 서간문이 그중 압권(壓卷)이다.
“보내온 글과 게송 네 글귀를 읽어 보니 글이 모두 진지하고 구절구절이 활기가 넘칩니다. 대장부 활달한 남아가 후오백세(後五百歲) 뒤에 출현할 줄을 어찌 기약인들 하였으리요. 우러러 찬탄하여 마지 않으며 뛸 듯한 기쁨을 무어라 형언할 수 없구료. 이렇게 깨달은 사람의 분상(分上)에는 비유하자면 커다란 불덩어리와 같아서 무엇이든지 닿기만 하면 타버리니 어찌 한가로운 말과 방편(方便)으로 지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깨달은 뒤의 조심은 깨닫기 전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깨달을 분이라도 있지만, 깨달은 뒤에 만일 수행(修行)을 정밀히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 여전히 생사에 유랑(流浪)하여 영영 헤어나올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한암스님 간찰)
여기에 감히 비견할 순 없지만 나는 도반들과 편지글 주고받는 것을 좋아했었다. 모두 노사의 영향이었을 게다. 지금은 불국사 강원 학장인 대강백 덕민(德旻)스님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어데엔가 안주(安住)한 곳이라곤 없는 그런 신음의 편지(片紙)… 아니 지면(紙面)을 짭찔히 풍기는 향수(鄕愁)를 느꼈다면 과민일까… 가을 낙엽 가을의 서글픈 비수(悲愁)라는 거는, 마치 짙은 아름다움에 취하게 하는 누런 홍화(紅花)의 잎사귄 나그네 발걸음에 밀리는 건지 아-. 덕민에게.”
또 지금은 한 산중인 축서암에 살고 계시지만 선화가(禪畵家) 수안(殊眼)스님- 이 때(70년대초쯤)는 표충사 뒤 한계암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을 무렵이다- 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오오, 우리의 생명(生命)은 푸름이 비취이는 인식(認識)의 순간들이다. 뿌리가 없어서 서로 마주보며 웃는, 웃기만 하는 뿌리 없는 인식엽(認識葉)들. 수안스님, 이젠 한계(寒溪) 골이 제법 풍정(風情)이 들 때가 되겠지요. 폭포가 비가 오니 별 수도 없이 불어야 되고, 폭포소리가 거세지면 세질수록 더욱 고독씨(孤獨氏)는 각도(刻刀) 끝에 힘이 나겠지요. 수안스님, 어쩌다 보니 소식(消息)도 못 드리고 미안 천만입니다… 古園.”
노사의 문집을 정리하면서 나는 쌀가마로 몇 가마에 해당하는 편지를 수 년전 책으로 엮은 적이 있다. 이처럼 서간문은 70년대 말까지는 선지식들의 법문답까지 주고 받는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 아- 그 시절이 더 풍부하고 그리워진다.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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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