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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산중에서는 구참이 되면 각방을 하나씩 주면서 방선시간에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하지만,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는 입승(立繩)과 선덕(禪德)스님에게만 소임자 방을 드리고 다른 대중은 상하판 할 것 없이 모두 큰 방과 지대방에서 함께 생활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윗목과 아랫목 어간과 상판, 탁자밑과 하판은 큰 방내에서도 구분지어 생활하고, 언뜻 보면 차별이 없는 듯 보이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그 속에서도 질서가 정연하고 상하판이 서로 존경과 신뢰로 유대가 이어지곤 했었다.
그 시절 내 노트에는 이런 편지글이 적혀 있다. 아마 함께 경봉노사(鏡峰靖錫, 1892~1982)를 시봉했던 시자가 행각을 나간 즈음 그 도반을 부러워하면서, 또 걱정하면서 쓴 글이다.
“6월이 너무 싱싱하구나! 눈부신 광망(光)에 푸른 녹음들이 물결을 이룬다. 안주(安住) 그 영원한 이데아계를 찾아, 시말(始末)도 없는 여로(旅路) 같은 길에 얼마나 더 쓸쓸한 집시가 되야 하는겐지. 산다는 것 이건 정말 나그네구나. 행운유수(行雲流水), 무엔지 알지 이 단어, 그리구 풍기는 냄새까지 운수(雲水) 결국 나그네 같은 인생 위에 또 나그네(?). 생(生)을 길 위에서 보낸 석가님의 그 후예들…. 걸망에 몸을 담아 길에서 온 운수(雲水)들이 방(房)을 메우고, 부디 흔들리는 출범(出帆) 같은 멋진 율동(律動)의 가락 잊지 말아야겠다. 네가 부탁한〈선가구감〉〈초심〉등은 보냈는데 잘 받았는지 더워가는 계절에 몸 성히…, 안녕을 빈다. 구원수좌에게.” (여기서 구원수좌는 필자의 사제스님으로 지금은 대승사 선원에서 정진하고 있는 구참이다.)
요즈음은 오히려 상.하판이 자연스럽게 어울리지만 예전에는 상하판이 함께 지대방에서 생활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질서의식이 항상 살아 있었고, 또 그것이 그 당시에는 오히려 자연스러움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렇다보니 요즘보다는 자연과 벗하는 시간이 더욱 즐거웠고,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가 초학자에게는 큰 위안거리였다. 반살림이 되어서야 한 번 행해지는 산행은 그래서 더욱 기다려지곤 했었다.
옛 어른 스님들은 이런 주변환경보다는 본인의 수행을 어떻게 하면 잘할 것인가를 고민하였고, 어떤 이는 하도 졸음이 오고 망상이 들끓으니 뒷산에 가서 통곡을 하거나 큰 나무에 머리를 짓찧기도 하고, 어떤 이는 졸음을 막으려고 얼음을 깨물었다가 50세도 안된 연세에 틀니를 하였다는 말씀은 이 시대의 학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또 결제철에 열심히 정진하던 수좌들은 해제철에는 의례히 하체근육 강화를 위해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종주(縱走) 등반하고 다니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사찰경제가 여유로워진 요즈음은 산에는 오히려 스님들의 발걸음이 뜸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전국에 선원이 많이 생기고 해제철에도 이른바 산철결제를 하거나 삼년결사, 또는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이어가는 경향이 많다 하니 다시 한번 선의 황금시대를 구가하는 듯하여 참으로 경하할 만한 일이다.
(통도사 극락호국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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