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러면 탐심이 왜 화두 참구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 혜봉 : 탐욕이 화두 참구를 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공부가 아닌 바깥 대상, 이를테면 유흥이나 섹스, 돈, 권력, 지식 등을 습득하는데 마음이 많이 간다면 바로 이와 같은 대상에 탐욕이 있기 때문이며, 이 마음이 많으면 화두를 들었다가도 화두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탐욕이 있는 대상으로 마음이 달려가기 때문에 마음공부와는 당연히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둘째는 마음공부 자체에 대한 탐욕입니다. 마음공부 자체에 대한 탐욕이라 함은 마음공부를 해서 대접받고자 하든지, 또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자 하든지, 타인보다 공부를 더 잘하고자 한다든지, 뭔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이러한 마음 자체가 이미 욕심이기 때문에 화두를 참구해도 모든 망념이 끊어지고 의정(疑定)이 분명한 화두삼매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욕심이 있으면 공부를 해도 뭔가 특별한 능력을 바라게 되고 자신의 본성을 깨치고 나서도 뭔가 또 다른 특별한 자기나 특별한 깨침의 세계가 있는 줄 알고 망상을 피우게 됩니다. 아니면 화두를 들고서 뭔가 특별한 능력이나 체험을 생각하고 화두를 참구합니다. 이것은 화두를 참구하되 실은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아니라 망상을 만들어서 망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가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 혜봉 : 조주 '무(無)'자 화두를 참구하는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은 '무(無)'자를 참구하는 데 2년이 지나도 아무런 진척도 없고 화두를 들고 있을 때는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뭔가 체험을 할 것도 같은데 체험도 안 되고 화두를 참구해도 공부가 더 되는 것 같지도 않고 나중에는 화두를 들면 답답하기만 하고 막막해서 공부하기가 싫어졌습니다. 하도 화두공부에 직면하여 발버둥치고 애를 쓰기에 불러서 화두참구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첫째는 깨닫는 데 목적이 있고, 둘째는 깨달으면 특별한 능력을 얻고, 셋째는 특별한 능력을 얻으면 대단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마음이 망념이니 추호도 남기지 말고 다 버리고 그 마음을 잡고 있는 마구니를 소멸시키고 나서 화두를 참구하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마음속에 깨쳐서 특별한 능력을 얻어서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크나큰 망념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이 놈이 마구니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소멸시키고 나서 '무(無)'자 화두를 참구했는데 그 후에는 '무'자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성성(惺惺)해지면서 의정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런데 '무'자 화두를 잡고 뭔가 나오기를 기대해 보세요. '무(無)'자 화두에서 특별히 무엇인가가 나오게 되는지 말입니다. 만약 화두 자체에서 뭔가 나오기를 바라고 참구한다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에서 달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경우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세계가 특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달을 보고서도 달이라는 것은 뭔가 특별히 다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달을 보고서도 달이 아닌 줄 알고 또 다른 달을 찾아 헤매게 되는 경우와 같은 이치가 됩니다.
▶ 화두를 참구하면 통 밑이 쑥 둘러 빠지는 듯한 체험을 한다거나, 온몸에 열이 났다가 업이 녹으면서 깃털처럼 가벼워졌다는 분들도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 혜봉 : 물론 그런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체험마저도 공부하는 사람의 업식에 따라서 체험을 하기도 하지만 누구나 다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반드시 통 밑이 빠져야 되는 것도 아니요, 온몸에 열이 났다가 사라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지은 업식에 따라서 경험하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공부 중에 경험하게 되는 하나의 현상이지 그 자체가 공부 과정에서 체험해야 하는 보편적인 과정인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어떤 분은 지옥 같은 경험을 더 많이 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들은 천상의 경험을 더 많이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은 공부 중에 경험하는 일부의 과정입니다. 사실 그러한 과정들도 알고 보면 그가 만들어서 잡고 있던 마음의 세계일 뿐입니다.
예를 들면 이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화두를 참구하다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분노도 사라지고, 두려움도 사라지고, 외로움도 사라지고, 괴로움도 사라지면서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해서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구나! 깨달으면 바로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공부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이것이 다인 줄 알고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고 공부 자체를 놓아버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그와 같은 상태가 약 일주일간 지속되더니 차츰차츰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 분은 이 때부터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걱정도 생기고 온갖 생각도 생겼습니다. '옛날같이 화나고 짜증나고 괴로운 상태는 싫어!' , '절대로 옛날로 돌아갈 수 없어!', '어떻게 하든지 이 상태를 붙들어야 해!'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초조해지고 공부하면서 체험했던 상태는 온데 간데 없고 불안과 초조만 더 늘어났고 급기야는 공부 자체에 대한 불신과 불안 내지는 공부를 일러준 스승마저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왜 나의 이런 상태를 외면하고 챙겨주지 않지?', '적어도 스승이라면 내가 이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즉각 해결해 주어야 하지 왜 안 해주는 거야!', '선생님 가르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등등 온갖 생각이 일어나면서 결국은 공부하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 그러면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 혜봉 : 2년 정도 망상을 피우고 괴로워하다가 다시 공부를 처음부터 하기 시작하면서 스승과 깨달음에 대한 특별한 상 때문에 그리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와 같은 상태에서 많이 벗어나서 마음공부의 길을 다시 가고 있습니다.
▶ 깨달음의 세계는 특별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왜 그런지 알고 싶습니다.
■ 혜봉 : 자신이 아는 깨달음의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 지금과 같은 세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 혜봉 : 지금과 같은 세계라 하셨는데 어떤 세계를 말합니까?
▶ 저는 요즘 제가 사는 이 세상이 답답하고 짜증나고 심심하고 재미없습니다.
■ 혜봉 : 지금 사는 세상이 답답하고 짜증나고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하셨는데 깨달으면 그렇지 않을 거란 말이지요.
▶ 예. 적어도 깨달으면 답답하고 짜증나고 심심하고 재미없는 마음은 없어지고 뭔가는 신나고 재미나고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 혜봉 : (여러 사람을 향해서) 이 가운데 답답하고 짜증나고 심심하고 재미없는 마음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 예. (몇 사람이 대답한다)
■ 혜봉 : 그러면 깨달음의 세계에 있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웃는다)
▶ 아닙니다. (다시 몇몇 사람이 답한다)
■ 혜봉 : 그러면 깨달음의 세계가 아닌 세계에 있습니까?
▶ 그것도 아닙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답한다)
■ 혜봉 : 그러면 어떤 세계에 있습니까?
▶ 답답하고 짜증나고 심심하고 재미없는 마음이 없습니다.
■ 혜봉 : 그것밖에 없습니까?
▶ '탁'하고 손으로 바닥을 친다.
■ 혜봉 : 그것이 다입니까?
|
선불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