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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그러했듯이 불교의 승려들도 죽어도 무덤이나 묘를 남기지 않는다. 영원불멸하지 않을 육신이나 뼈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 사유이다. 한 인간이 죽어서 남길 수 있는 것은 그가 살아 있을 적에 깨닫고 간직했던 정신일 뿐이다. 그러한 정신이 보편타당한 진리나 진실로 인정될 때, 불교인들은 그것을 법法으로서 받아들인다. 그래서 승려가 죽으면 그러한 법의 상징으로서 그 흔적을 다듬은 돌로 표시하게 되는데, 이를 부도浮屠라고 한다. 물론 거기에는 육신도 없고 뼈도 없으며, 뼈 속에 박혀 있는 영롱한 구슬로서, 사람들이 흔히 수행의 결정체일 것으로 믿는 사리만이 담겨 있다. 물론 그런 것이 없어도 상관없다. 보통 승려가 그럴진대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분의 주검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대단히 큰 부도를 만들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순서를 거꾸로 하여 생각하여 왔다. 부도의 관습은 부처님의 경우를 전례로 삼아 후대에 형성된 것이다.
입멸할 때까지 부처님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는 빨리의『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의하면, 부처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의 여러 종족들은 그 분의 유품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한다. 시신을 화장하고 나자 많은 사리舍利들이 쏟아졌는데, 이의 분배를 둘러싸고 전쟁까지 야기되었다고 한다. 결국 원만히 수습되어 부처님의 사리는 8등분되었고, 이마저 분배받지 못한 종족들은 사리를 담았던 병이나 재와 같은 나머지 유물들을 가지고 갔다. 사리를 받은 여덟 종족들은 각자 자기 땅에 사리를 안치하고서 그 위에 이를 기념하는 구조물을 쌓았다. 이것을 인도 말로는 ‘스뚜빠’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탑塔이라 쓴다. 특히 부처님의 유골이 안치되었으므로 또는 부처님의 유덕을 기리는 것이므로 불탑佛塔이라 칭하는 게 원칙이다. 중국이나 한국 같은 곳에서 후대에 생긴 부도는 그러한 탑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불탑은 부처님을 예배하는 신앙의 중심지가 된다. 왜냐하면 초기에는 불상佛像을 제작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분명히 그 자신이 신격화되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에 대한 절실한 신앙을 표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불탑밖에 없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불탑에 운집하게 되고, 이에 따라 불탑을 관리할 건물이 형성되었을 것인데, 이러한 곳이 탑원이다. 제48문에서 설명하였듯이 애초에 승원은 이런 탑원과 분리되어 있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불탑은 이후 불교신앙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대승불교도 불탑을 중심으로 한 신앙으로부터 출발하였음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어쨌든 불탑은 신앙상 크게 세 가지의 기능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분묘로서의 기능이다. 후대의 부도처럼 특정 인물의 사리를 모셔 놓음으로써 탑은 그에 대한 숭배나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는 불탑에도 유명한 고승들의 유골을 봉납해 두었다고 한다. 둘째는 예불의 대상으로서의 기능이다. 반드시 부처님의 사리만을 안치한 것이 불탑이었던 것은 아니라 한다. 부처님과 관계되는 것이면 무엇이나 모셔두고 부처님의 대신으로 삼아 예불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처님의 손톱ㆍ머리카락ㆍ치아 등을 안치한 불탑도 있었다. 당시의 불탑숭배는 원칙적으로 육신이 없어진 부처님에 대한 예배로서 추모의 성격을 지닌 공양이었다. 그리하여 불탑은 영원한 부처님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셋째는 공덕을 쌓는 장소로서의 기능이다. 불탑의 운영을 위한 보시는 지극히 큰 공덕을 쌓는 행위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승원이 그러하듯이 불탑도 소위 복전福田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인도에 남아 있는 불탑에는 불탑을 건립할 때 보시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불탑의 신앙적 의의는 그것이 무엇보다도 재가신자의 신앙적 구심점이 됨으로써 나중에 대승불교 성립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원래 부처님은 제자인 아난다를 통해 출가제자들이 자신의 사리를 봉안하는 일에 참여하지 말도록 하였다. 또 사리의 공양은 신심깊은 바라문이나 거사들이 할 일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불탑신앙은 재가신자들의 전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전통이 고수되고 있는 버마에서는 현재에도 불탑이 재가신자의 위원회에 의해 관리ㆍ운영되고 출가자는 이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인도에서 출가자들이 불탑을 전혀 관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불탑의 명문에는 승려들의 이름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음에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것들 중 가장 오래된 불탑은 그 기원이 서기전 2~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또 아쇼까왕은 많은 불탑을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불탑의 건립이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대승불교의 성립시기와도 일치하는 서기 전후이다. 이때가 되면 승원내에서도 불탑이 건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위 승물僧物과 탑물塔物이라 하여 승려에 대한 보시물과 불탑에 대한 보시물을 구별하고, 그의 사용이 뒤섞이지 않도록 규제하였다. 이런 사실로 보아 불탑이 넓은 의미에서 승원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승단으로부터는 독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불탑신앙은 보다 대중적인 신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불탑신앙은 다양한 불교예술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불탑을 공양하는 데 있어서는 무용ㆍ음악ㆍ꽃ㆍ향 등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불탑의 재산을 관리하는 데에는 특수한 전문인이 필요하였다. 그것은 원칙적으로 승단의 재산이 될 수가 없었고, 또 부처님의 예배에 바친 것으므로 일반 속인의 재산일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를 관리하는 사람은 속인도 아니고 승려도 아닌 중립적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소위 비승비속非僧非俗이다. 이들의 역할은 단순한 재산관리에 그치지 않고 불탑을 찾는 신자들의 신앙적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전생을 이야기해 주고, 부처님의 위대성과 무한한 자비를 설명하였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반복됨으로써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구제에 관한 교리가 성립하게 된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시발이며, 비승비속인 이들의 입장이 바로 보살이라는 대승의 인간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의 구제력에 대한 강렬한 염원은 불상의 제작을 촉진하게 되었고, 불상이 성행함에 따라 불탑의 신앙적 역할도 상대적으로 감소되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 건립된 많은 탑들은 부처님 자신보다는 그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속에는 주로 불전이나 이에 상당하는 것들이 안치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사찰이면 어디에나 있는 탑을 대하면서 그 의의를 별로 절실하게 느끼지 못한다. 단순히 하나의 예술적 작품이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기 일쑤이다. 신앙의 대상으로야 그보다 훨씬 생생한 감명을 주는 불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상을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부처님의 구제력을 보다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탑 덕분이라는 점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염원의 표시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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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이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