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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에게,
편지주어서 고맙구나. 잘 지내니? 내게 편지를 쓰기로 한 건 참 잘했다.
옥중에서 지내고 있다고 했지. 선을 수행하기에 그 곳은 매우 훌륭한 곳이다. 나도 한때 감옥살이를 한 일이 있었다.(숭산스님의 투옥 체험은 스님의 법문집"부처님께 재를 털면"에 수록돼 있습니다.) 어쩌면 그 때의 생활이 나를 선사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너도 그렇게 될지 모르지!
선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다고 했지. 그건 좋은 것도 아니요, 나쁜 것도 아니다. 네가 뚜렷한 방향을 가지고 있다면 선에 관한 책, 성경 그리고 모든 종류의 경전은 진실된 깨달음을 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뚜렷한 방향 없이 그러한 책들을 읽는다면 네 마음은 온갖 잡념으로 가득 차게 된다. 잡념은 곧 욕망이요, 욕망은 곧 번뇌이다. 따라서 이런 생각이나 이해는 네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네게 올바른 지침은 무엇인가? 너에게는 과연 그 방향이 있는가? 만일 네게 방향이 있다면 나에게 입증을 해 보렴! 만일 그 방향이 있는가? 너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너는 언제 죽을 것이며 그 후에는 어디로 갈 것인가? 네 이름은 무엇인가? 나이는? 이런 질문은 모두 간단한 것들이지. 아마 네 이름은 로버트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네 육체의 이름일 뿐이란다. 너의 진정한 자아의 이름은 무엇인가? 또 너는 네 육체의 이름일 뿐이란다. 너의 진정한 자아의 이름은 무엇인가? 또 너는 네 나이가 서른다섯 살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 또한 육체의 나이일 뿐이지. 너의 진짜 나이는 몇 살인가? 말해보렴! 내게 말해봐!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오직 모를뿐"이란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라. 너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너의 정신이 무엇인지, 네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지 말아라.
다음으로 가끔 네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지. 너는 그렇게 느낄뿐이다. 그런 느낌이 사라지면 깨달음도 사라지기 때문에 그런 느낌만으로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다. 진정한 깨달음은 움직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무엇을 느끼는 것도 아니요, 어떤 생각이 나는 것도 아니다. "반야심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얻음도 없고, 얻는 바도 없다." 너도 이 가르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따금 근본 마음자리(本源心)에 관해 이야기하곤 한다.
근본 마음자리란 무엇인가? 간단한 저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하지만 저울 위에 아무런 것도 없다면 저울 바늘은 움직이지 않겠지. 만일 그위에 어떤 물건을 올린다면 바늘은 그 무게를 가리키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다시 그 물체를 없애면 바늘은 0으로 돌아오지. 그 0이란 눈금이 바로 근본 마음자리란다. 네가 근본 마음자리를 알게 되면 좋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고, 나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어쨌든 네 마음의 바늘은 한 방향으로, 아니면 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겠지. 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덧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느낌이 사라지고 나면 마음의 바늘은 0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근본 마음자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저울 위에서 무거운 물건을 들어냈는데도 저울의 바늘이 아직 그 무게를 가리키고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아니면 저울의 바늘이 다시 0으로 돌아오는 과정 중 일부일 뿐이겠지. 그렇다면 네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너의 저울은 올바른 무게를 재지 못하는 것이지. 만일 그러한 저울 위에 다시 무거운 것을 올린다면 그 저울은 완전히 망가져 버릴 것이다. 그러니 우선 근본 마음자리를 찾아야 하며, 일단 찾으면 흔들임없이 지켜야 한다.
택시에 장착된 충격흡수 장치는 그리 효과가 크지 않아서 낮은 요철을 만나도 아래위로 심하게 흔들린다. 하지만 기차는 큰 충격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한 장애물을 만난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만일 네가 근본 마음자리를 흔들림없이 간직한다면 네 정신은 더더욱 강해질 것이며 어떤 시련도 견딜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중생을 번뇌로부터 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선이란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네가 그 무언가를 만든다면 그것을 가질 것이요, "특별한" 그 무엇을 만들어 낸다면 그 "특별한" 것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과 "특별한" 것은 네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단다. 그 모든 것을 버리려무나.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네가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을 완전히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의 절반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 속에는 이전의 경험, 생각 또는 느낌의 무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나 이 세상과 교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그때 그때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너는 이미 완벽해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근본 마음자리를 찾음으로써 자신의 올바른 상황과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오직 모를 뿐"이란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야 한다. 네가 감옥에 있든 다른 어떤 곳에 있든 전혀 상관없다. 너는 이미 삶과 죽음을 초월한 자유를 가지게 될 테니 말이다.
여기 네가 풀어야 할 공안(公案)이 하나 있다.
향엄상수(香嚴上樹)- {마음의 양식} 제 5문
향엄 스님이 말했다. "그것은 이로 가지를 악물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처지와 같다. 그는 묶여있기 때문에 손으로 가지를 잡을 수도 없고 발은 나무에 디딜 수도 없다. 그 때 나무 밑에 있는 어떤이가 '보리 달마는 왜 중국으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매달려 있는 자가 대답하지 않는다면 그 때문에 죽을 것이요, 만일 대답한다면 나무에서 떨어져 죽게 될 것이다. 만일 네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바로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는가?"
네가 "오직 모를 뿐"이란 마음으로 바로 들어가길 바라며, 근본 마음자리를 찾기 바란다. 그리고 화두를 풀어 모든 중생을 번뇌로부터 제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숭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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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