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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고 있다. 청청한 소나무 가지 위에 흰 눈이 살포시 내려 앉아 한창 꽃을 피우고, 하얀 순결함으로 숨을 죽인 산사는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듯했다.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그렇게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 간다. 어제는 흘러갔고 오늘은 이렇게 고요한 신새벽으로 다가오고 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하는 것은 어제에 집착하는 우리의 마음뿐이다.
집착은 마음의 그림자이고 환幻이다. 거짓되고 혼탁한 마음의 그림자에 구속되어 있는 사람은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지 못한다. 신새벽, 눈 내린 산사의 아름다움은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의 것이다. 마음이 구속되어 있는 사람은 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없다. 마음에 뒤엉켜 떨어질 줄 모르는 집착의 응어리가 언제나 과거를 기웃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은 파도치는 바다와 같다. 어느 한순간도 고요한 안식을 약속하지 않는다. 거칠게 파도치는 인생의 바다를 당당하게 항해해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이 고해苦海의 바다 속에서 누군들 어렵고 힘들지 않겠는가. 누군들 한때 좌절의 길목을 서성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큰 용기와 지혜로 어려움을 딛고 당당히 일어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높은 지위와 명예, 부를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진정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순간순간 닥치는 위험을 지혜와 용기로 맞서 헤쳐 나가고, 주어진 역경을 기회로 삼아 시작의 의미로 받아들일 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좌절이란 덧없다.
이들은 흘러간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에 겁먹지 않으며, 현재를 무엇보다 중요시여겨 자신의 시간을 충실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혹여 나는 부질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에 매달려 보람되게 쓸 현재를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아가면서 인생에 역경 한 번 없이 편하기만을 기대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다. 아무런 약속도 주어지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속에는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태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위험은 높은 파도가 되어 모든 것을 휩쓸고 갈 것이다.
특히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단 마음의 중심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노 없는 배처럼 길을 잃고 넓은 바다를 한없이 표류하는 신세가 된다.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만 바로 잡는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다.
살면서 가장 슬픈 것은 마음을 잃는 것이다. 비록 가진 것을 다 잃었다 해도 희망을 향한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상실과 소유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상실이 곧 소유고, 소유가 곧 상실이 되는 자유로움을 그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재산이다.
눈을 감자.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아직 과거의 상처와 좌절이 남아 있다면 모두 버리도록 하자. 마음에 좌절과 회의가 남아 있을 때 시간은 과거에 머물게 마련이지만, 희망과 확신을 갖고 있을 때 시간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깨달으며 힘차게 길을 떠나자.
- 성전스님의 산중에세이 _ '산과 바람과 도반의 그리움, 유혹'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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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