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처님과 비교하면 저는 못난 사람입니다.
■ 혜봉 : 어떤 것이 못난 것입니까?
▶ 저는 화내고 욕심부리고 무지합니다.
■ 혜봉 : 그것이 본래의 당신입니까?
▶ 아닙니다.
■ 혜봉 : 그러면 본래의 당신은?
▶ 부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혜봉 : 그러면 비교할 수 있습니까?
▶ 없습니다.
■ 혜봉 : 그 비교하는 마음이 분별하여 망상을 짓습니다. 이 망상을 버리지 않는 한은 진불(眞佛)을 보아도 부처로 보이지 않으니 아무리 공부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부처라고 생각하면 아만이 높아져서 공부로부터 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 혜봉 : 물론 그렇지요. 그렇다면 자기가 부처라고 생각하면 부처입니까?
▶ 아닙니다.
■ 혜봉 : 아만은 본래의 자기입니까?
▶ 아만도 망상입니다.
■ 혜봉 : 높다, 낮다, 훌륭하다, 훌륭하지 않다 하는 마음을 놓아버리라고 했는데 왜 놓아야 되는지 이제 알겠습니까? 그래도 둘로 나누어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분이 있다면 이런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세상 가운데 고통받는 가장 작은 이웃마저도 섬겼다는 마음 없이 섬기는 것은 참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에서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자비로써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테레사 수녀님은 인도의 캘커타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부처님의 자비로 자신의 나라를 침략하고 자신의 민족을 죽인 중국사람마저 자비로써 용서하시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가는 곳마다 자비행을 실천하십니다. 이 두 분의 사랑과 자비를 비교할 수 있습니까?
본래 중생과 부처도 둘이 아닐진대 무엇을 나누어 이거다 저거다 구분하고, 좋다 나쁘다 분별할 일이 있겠습니까? 예수니 부처니 하는 것도 다 이름하여 예수이며 부처입니다. 이름이나 형상으로 비교하여 따지는 것은 따지는 것 자체가 망녕된 일입니다. 아무튼 모든 분별을 놓고 분별을 넘어선 참된 이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 (수련 중에 한 수련생이 일렀다) 선생님, '개에게도 불성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조주 스님께서 왜 '무(無)'라고 하셨는지 알았습니다.
■ 혜봉 : 알았으면 일러보세요.
▶ 의혹을 끊어주려고 '무'라고 하셨습니다.
■ 혜봉 : 의혹을 끊어서 뭐하려구요.
▶ 깨닫게 하려구요.
■ 혜봉 : 그러면 무엇을 깨달았는지 일러보세요.
▶ 모르겠습니다.
■ 혜봉 : 조주 스님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조주 스님의 뜻을 알고자 생각하지 마세요. 일체의 생각이나 의도를 내려놓고 오직 "왜 '무'라고 하셨는가?" 하고 더 참구하세요.
▶ (수련생 중에 또 한 분이 물었다) 조주 스님의 '무'자 화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 혜봉 : 조주 스님은 조주종심(趙州從심) 혹은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 하는데 흔히 조주(趙州)라 합니다. 스님께서는 중국 산동지방 사람으로 전등록(傳燈錄)에 따르면 778년에 출생하여 120세가 되도록 살았다 하며 조주라 불리는 이유는 조주지방의 관음원(觀音院)에서 오랫동안 방장을 지냈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는 어려서 출가하여 남전(南泉) 선사를 찾아가서 스승으로 모시면서 스승의 뜻을 완전히 깨치셨고, 스승이 돌아가신 후에는 오랫동안 천하를 주유하시다가 80세에 조주 관음원에 계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깨닫는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특히 스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과 근기에 따라 그때 그때에 맞는 질문과 답변으로 깨닫게 했는데 조주 스님의 '무'자 화두는 그 중의 하나입니다.
'무'자 화두에 대하여 좀더 설명하자면 이러합니다. 조주 스님의 문하에서 수행을 하던 한 스님이 의심이 일어났습니다. '아주 작은 미물에서부터 축생에 이르기까지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럴까?' 이와 같은 생각을 골똘히 하면서 걷고 있는데 조주 스님께서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개가 뜰 앞을 지나갔습니다. 이것을 본 그 수행자는 조주 스님께 다가가서 스님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의심을 물었습니다. "스님,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셨다는데 정말로 저 개한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스님은 평소 제자들에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을 들은 순간 스님께서 '없다(無)'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불가에서 수많은 수행자들이 생사를 초탈한 참된 자기를 깨닫고자 참구하는 조주 스님의 '무'자 화두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조주 스님께서는 평소에는 '일체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고 하셨다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에 '없다' 하셨는데 '왜 없다 하셨을까?' 하고 의심이 일어나면 이것이 '무'자 화두가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일체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왜 '무'라고 하셨을까? 하고 의문에 사무치면 '무'자 화두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
선불교 
